때아닌 폭염으로 대지가 몸을 뒤척이고 있다. 가끔은 자연도 순행의 궤를 벗어나 섣부른 인간의인내심을 시험하는가 보다. 소소한 자연의 변화에 예민해진 사람들의 발길이 남산을 향한다. 아무려면 어떤가. 언제나 넉넉한 남산의 품에 들어 세상을 잠시 잊는 것도 좋은 것을….처음 남산을 찾은 사람이라도 이골짝 저골짝을 오르내리다보면 투박하지만 자연미가 넘치는 골이름에 정겨움마저 느끼게 된다. 쑥두듬골,틈수골,부엉골,유느리골,절골,삿갓골,부처골등 어지간히 둔한 사람이라도 한눈에 골의 특징을 알 수 있을만큼 친근한 이름을 갖고 있다. 지명의 유래가 절로 궁금해진다. 남산에는 아직도 신라 천년의 내력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된다.
역사의 그림자가 소롯이 남아있는 포석정이 입구를 지키고 있어 포석골로도 불리는 서남산 부엉골. 이 골의 진면목인 부엉드미에서 지명이 유래됐다. 골이 깊어 낮에도 부엉새가 운다는 부엉드미. 포석정을 왼편에 끼고 돌아가는 제법 널찍한 등산로를 따라 10여분 오르면 유느리골을 따라부흥사로 곧장 이르는 길과 늠비봉쪽으로 오르는 산길이 갈라선다. 늠비봉쪽 산길로 접어들어 땀에 젖은 옷이 무거운 느낌이 들 정도의 팍팍한 오름이 계속되다 언뜻 한눈에 들어오는 부엉드미가 눈을 찌른다. 단애(斷崖). 깎아지른 벼랑이 마치 까마득히 하늘에 걸려있는 모습이 절묘하고장엄한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위로는 부엉드미가,아래로는 거대한 포석암반의 장관에 눈이 휘둥그래진다. 큰물이 없어서인지 아직 마른 암반이지만 여름이면 많은 등산객들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힐 정도로 명소다. 부엉드미와 이웃해 석양무렵 황금빛으로 변한다는 뿔딱바위(黃金台)가 부엉골을 깊게 에워싸고 있다.
부엉골의 지류인 배실(기암골)은 만파식적의 전설이 서려있어 퉁소골로 불린다. 만파식적을 보관한 창고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흔적을 찾기 힘들다. 이런 전설때문인지 배실마을에는 아직도 올곧은 대나무가 울창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다. 대금장 문동옥씨가 배실에 둥지를 틀고 대금제작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억겁의 인연때문일까. 삼릉을 못미쳐 망월사로 드는 좁은 길을 따라 1㎞남짓 오르면 평평한 바위에 바둑판을 새겨 신선들이 모여 바둑을두며 놀았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바둑바위(棋岩)에 닿을 수 있다. 이 바위이름에서 기암골이 유래됐다.
금오산에서 동남산쪽으로 흘러내려오는 계곡인 쑥두듬골(蓬丘谷)은 쑥더미골로 불린다. 네개의 골짜기에서 부채살처럼 물줄기가 흘러 모여 남산리계곡으로 합류해 남천으로 들어가는 형세다. 비교적 넓은 계곡이지만 절터는 하나도 없고 여기저기 무덤만 산재해있다. 옛말로 무덤을 다북굴허라고 했다는데 쑥을 말하는 다북과 마을을 뜻하는 굴허가 합쳐져 쑥이 우거진 마을로 풀이된다.쑥이 우거진 두듬(언덕)을 줄여 쓴 쑥두듬골은 사자들이 안식하는 영혼의 세계일까….서남산 첫 계곡 천룡골. 해발 494m의 고위산(수리산·천룡산)을 정점으로 서쪽으로 흘러내린 계곡이 도중에 틈수골과 와룡골의 개울물과 합해 기린내로 흘러든다. 제일 높은 곳, 정수리를 의미하는 수리에서 나온 수리산은 유명한 천룡사지와 삼층석탑을 품에 안고 있다. 신라말때 파괴된것을 고려초기에 다시 지은 최제안의 두 딸인 천녀와 용녀의 이름에서 따와 천룡사라 했다는 일화도 있다. 남산의 최고봉 수리산의 정상에 서면 모든 산하가 눈아래 펼쳐지고 남산에 와있음을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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