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의평화" 내가 꿈꾸는 삶은 방랑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원시적인 방법으로, 자동차도 기차도 아닌 오직내 발로 땅을 밟으며 햇빛과 바람 속을 오래 걷고싶다. 가야할 곳과 이르러야할 때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배회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도 대개 이런 것들은 부질없는 소망으로 남겨진다. 지금 저 문을 나서야할 내발이 온갖 족쇄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늘 해야할 일들이 밀려있고 또 그 일들에는 정해진 시한이 있다. 나는그런 일들에 끌려 이곳을 가고 저곳을 가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과가 끝나고 해가 산밑으로 잠길무렵이면 나는 이 숨막히는 일상에서 작은 반란을 도모한다. 한두시간쯤 뒷산을 그냥 정처없이 배회하며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때 나에게는 다른 목적이없다. 건강도 기분전환도 내 목적이 아니다. 나는 그저 저 숨막히는 족쇄로부터 내 발을 조금 헐겁게 해주려할 뿐이다.
△대지와 만나면서 새롭게 깨어나
우선 나는 구두를 벗고 가벼운 운동화로 갈아신는다. 내 연구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는 마치 팥방개 놀이라도 하듯이 아스팔트 길이나 시멘트 길 그리고 대리석이나 보도블록이 깔린 길등은 한사코 피하며 부드러운 흙, 싱그러운 잡초, 잔디처럼 낮게 깔린 풀밭을 골라 디디며 산길로 들어선다.
이때 나는 사색에 잠기려거나 숙제처럼 남겨진 어떤 문제에 골몰하는 따위의 허튼 수작을 하지않는다. 단지 발의 느낌에 집중하고 그 감각에 충실하려 한다. 하루종일 시멘트와 아스팔트 그리고 계단만을 오르내리던 내 발은 생명의 대지와 만나면서 전혀 새로운 감각으로 깨어난다. 단단한 자갈과 퍼석거리는 바위, 촉촉한 땅과 마른 대지, 돋아나는 잔디와 마른 풀, 물 오른 나뭇가지와 마른 나무등걸, 밟히는 이 모든 것들에서 나는 다채로운 쾌감들을 솎아낸다. 발바닥이 둔감하다고? 아 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고정관념이냐. 발은 발의 방식으로 몹시 예민하다. 그것은 싱싱한 것과 말라비틀어진 것, 부드러운 것과 딱딱한 것,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을 발바닥의 촉감으로한번에 짚어낸다. 다만 두꺼운 구두창과 하이힐의 높은 굽으로 저 딱딱한 시멘트 바닥의 밋밋한평면만을 밟느라 우리 발의 그 예민한 감각이 속수무책으로 퇴화해갔던 것 뿐이다. 하지만 산길을 걸으며 그 예측할 수 없는 땅의 굴곡들을 발로 거듭 더듬다보면 깨닫게 된다. 부시맨들이 가진 저 생생하고도 날카로운 발의 감각들은 오직 그들만이 타고나는 것은 아님을.△땅위를 발로 걷는 자들은 겸허
땅위를 발로 걷는 자들은 겸허하다. 발바닥으로 땅의 숨결을 호흡하고 생명의 숭고함을 감지하는자가 어떻게 감히 방자해질 수 있으랴. 인간은 그들의 발이 땅에서 멀어지면서 교만해져갔을 것이다. 말이나 가마, 자동차나 비행기등 탈것에 오르면 땅은 발끝에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눈 아래내려다보여질뿐이다. 땅이 내려다보이면 땅에서 자라는 모든 생명가진 것들도 내려다보인다.하지만 내가 산길을 걷는 것은 겸허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그것이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해방된 발 위에 얹혀진 몸은 깃털처럼 가볍다. 살아있음이 즐겁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큰축복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요즈음 들어서야 비로소 니체가 소인을 '대지에 발 디디고 선 자'라고 했던 이유를 알것 같다. 대지에서 생명의 축복을 읽어내려면 발은 땅위에 있어야 한다.발은 몸의 식민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해방되어야 할 영혼'임을 무시로 일깨워주는 아픈 상처같은 것이다.
〈부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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