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8순 장옥선할머니 '6.25아픔' 책으로

착취와 억압의 일제시대부터 최첨단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까지 한 시대를 회한과 고통으로 살았던 장옥선씨(82·경북 김천시 부곡동). 8순을 넘긴 장씨가 6·25 47주년을 맞아 전쟁을 모르는이 세상 젊은이들에게 한 권의 책을 남겼다.

"50년 7월 15일.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빈 손 쥐고 떠나는 피난길에 가슴이 미어진다. 5남매를 데리고 장림동리를 돌아 굴텅고개를 넘었을 때 피눈물이 솟네. 하늘도 서러운 듯 가는 빗줄기를 뿌린다"

서른 세 살의 나이에 경북 상주 화동에서 낙동강까지 피난살이를 했던 장씨는 지금도 괴로움을감추지 못한다.

"남편은 자전거에 무거운 짐을 싣고 안장 앞 삼각대에 양식을 얹고 그 위에 5세 둘째 아들을 올렸다. 맏딸(13세)은 생후 6개월 아기를 업고 장남(9세)이 괴나리봇짐을 지고 둘째 딸(7세)은 그냥걸었다. 나는 취사도구를 이고 아이들을 뒤따랐다"

피난 닷새째 새벽 길을 나섰지만 아이들은 알아서 봇짐지고 아기를 업고 앞장서는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하기까지 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피란 길에 만난 한 가족은 아이를 잃어버릴까 새끼로 조기 엮듯 아이들을 묶어 아버지는 앞서고어미는 뒤에서 아이를 챙긴다. 중풍인 시어머니를 업고 피란을 떠나던 두 여인은 기력을 잃은채길바닥에 엎어져 통곡했다"

낙동강가에 이르렀을 때 아군과 적군의 교전이 최고조에 달해 포탄과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 장씨 부부는 어차피 죽을바엔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자는 결정을 내렸다고 할머니는 회고한다."낙동강변에 임시 천막을 치고 살았을 때 포탄을 맞고 복부가 파열된 20대 청년이 창자를 주워손수레 아래로 몸을 숨기는 것을 봤다. 살아보겠다던 그 청년은 곧 숨을 거뒀다. 무엇을 위한 전쟁이고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곳곳에 널린 시체, 총성에 놀라 날뛰는 소들, 절규하며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치를 떨었다. 낙동강변은 생지옥이었다"

한달여 피란살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남편이 인민군 보국대로 끌려갔지만 도망쳐 나온 것으로 모든 것을 잊었다. 국군이 진격했을 때'공산주의 부역자 색출'이라는 한파가 있었지만 다행히 살아남았다.

5남매가 훌륭하게 성장하고 뒤이어 낳은 남매가 이미 중년에 접어들었으나 6·25만 되면 장씨는밤잠을 설친다. 이달 초 가슴 속에 묻었던 한(恨)을 한 권의 짧은 책으로 토했을 때 장씨 가족들은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장씨는 '내가 겪었던 6·25'라는 책의 끝머리에서 후손들을 위해 이렇게 남겼다."후손들에게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남북이 하나되어 이산가족 얼싸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왔으면…. 전쟁의 기억은 영원히 살아있어 이 세상을 떠나기 전 지난날의 쓰라림을 몇자 글월로 남긴다"

〈全桂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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