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객석과 무대'" 주말엔 또 뭘 하나. 친구와 만나면 어디로 가지? 줄서서 예매한 할리우드 영화는 보고나면 허탈하고, 록 콘서트에 가서 같이 머리를 흔들기엔 목뼈가 너무 굳어버린 사람이라면… 극장이 어떨까. '극장'하면 '영화관'이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연극'은 너무 멀리있다는 얘기는 접어두자. 무대에서 발이 끌리는 소리까지 생생한 '라이브'로 전달되는 곳. 연극무대는 관객과 가장 가깝다. 대구에 단2곳뿐인 연극전용소극장 '예전(藝展)'(424-9426)과 '객석과 무대'(256-9764). 여기서 연극같은 인생이 펼쳐진다.
공연 30분전. 분장을 마무리하는 배우들의 손이 바빠진다. 아버지역의 영만씨는 아직 상투도 못올렸다. 무대뒤의 초조함을 관객들은 알고 있을까. 정신대할머니를 다룬 '거짓말장이 여자, 영자'를 보러 극단 예전을 찾은 사람들 가운데는 딸의 손을 잡은 어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정신대가뭐냐면 말이야… "
10분전. 배우들은 막 뒤에 자리를 잡고 명상에 들어갔다. 마지막까지 분장실에 남은 영자역의 재화씨(27)가 고작 5분남짓 출연하는 학도병 민석이(22)를 다독거린다. "나름대로 자신있게 치고 나가는 거야. 감정정리도 안된 상태에서 마음대로 하지는 말고…" 연극무대가 처음인 막내 민석은대답대신 고개를 끄덕끄덕.
이제 5분 남았다. 그런데 할로겐 조명이 말썽. "램프교체! 빨리빨리…" 연출자 김태석씨(39·극단예전대표)는 속이 탄다. 째·깍·째·깍… 초침이 달려가는 소리.
더덩! 드디어 북이 울렸다. 여기저기서 번쩍번쩍 터져나오는 불빛. "아악! 사진찍지 말아요. 아냐,난 김영자가 아냐. 가네꼬 에이꼬라니, 난 몰라! 정신대 같은거 몰라요" (늙은 영자, 무대 위에서오열한다)
1시간30여분의 공연동안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기 위해 배우들은 오전10시부터 준비에 들어갔다.발차기 2백회, 피티체조… 공수훈련을 방불케하는 신체훈련에 여자라고 예외는 없다. 팔굽혀펴기20개는 기본. 오후에도 쉴 틈은 없다. 기획작업. 거창하게 들리지만 시내를 뛰어다니며 포스터를붙이고 전단을 돌려야 한다. 연극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객석과 무대를 하나로 묶는 시도가 눈에 띄는 작품입니다" 예전에서 만난 장진호교수(42·대경전문대 영연과)는 객석으로부터 느닷없는 배우의 출현, 영자가 정신대 혼령들을 이끌고 저승길로향하면서 관객들 사이를 헤집는 장면등을 높이 샀다. "좁은 무대를 또 3등분해서 입체적으로 사용한 점도 돋보입니다"
'거짓말장이 여자, 영자'는 다음달 13일까지 공연될 예정이다.
소극장의 명맥을 이어가는 또다른 공간, 극단 '객석과 무대'의 무대는 색다른 열기로 가득하다.지난 4월의 '비어있는 곳으로 부는 바람' 이후 성인극 공연은 휴식상태. 다음 예정작인 '엄마가50에 바다를 발견했다'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아동극만 무대에 올려진다. 24일 오전11시. 이날역시 극단 '객석과 무대'의객석은 서대구속셈웅변학원 원생80여명이 채우고 있었다. 무대에 오른것은 '라이온 킹'.
"'달팽이 집을 지읍시다'노래 아는 사람-!" 앵무새 분장을 한 김미란씨(25)는 본업인 배우직을 버리고 레크리에이션강사로 나선 것 같다. "다같이- 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아름답게 지읍시다. 점점크게… 점점 작게…." 1백60개의 고사리손이 허공에서 반짝반짝 별을 그리고 어수선한 분위기가가신 뒤에야 연극은 시작된다.
가짜수염을 단 사자가 우스꽝스럽기만 한데도 분장한 얼굴이 못내 무서웠던지 맨앞줄에 앉은 5살바기 준석이가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원호가 그 뒤를 따르고, 결국 맨 앞줄은 온통 울음바다. 뒷줄에 앉은 상호(7)는 제법 느긋하다. "나저거 만화로 봤어요. 저 삼촌 나쁜 놈이야. 거짓말들으면 안돼요" 장면이 바뀔때마다 아이들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무대 속으로 푹 빠져든다. 연극이 뭔지 잘모른다는 아름이(7)에게 연극은 '그냥 재미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질러대는 고함소리 그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가 되버린 객석과 무대. 그러나 평소의 모습은 다르다. 지난해 12월 막을 내릴 때까지 무려 14개월동안무대에 올려진 단막극 '어미'를 비롯, 창단 11주년을 맞은 극단 객석과 무대는 나름대로의 저력을 인정받고 있다.예전, 객석과 무대 외에도 연극을 볼 수 있는 곳은 많다. 시민회관, 각 백화점의 아트홀들…. 좀유명하다 싶은 사람들이 나오는 연극은 오히려 그런 곳에서 공연된다. 그러나 연극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용극장을 고집한다. 왜 그럴까? "만약 백화점의 공간을 빌려서 공연했다면 '어미'를 1년 넘게 앵콜 공연하는 것이 가능했을까요?" 객석과 무대 대표 이강일씨(42)는 되묻는다. "전용극장을 운영하면 경제적 비용은 더 들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시간과 노력 비용은 줄게 되죠" 예전 대표 김태석씨도 "연극은 배우뿐만 아니라 무대와도 호흡을 맞추는 것"이라며 "고작 2·3일 공연하고 떠나는 서울극단과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고 대답했다. 무엇보다도 소극장은관객들과 가까이 있다. 가뭄에 콩나듯 며칠씩 문을 여는 대형극장과는 달리 소극장에서는 거의일년내내 공연이 있고 '상표'가 분명한 연극이 있기 때문이다.
연극과 친해지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인생은 연극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평생토록 연극 한편못보는 사람도 너무 많다. 올여름은 '영화관'이 아닌 '극장'에 가서 뜨거운 무대 열기를 느껴보는것이 어떨까.
〈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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