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정부가 한국산 텔레비전 수상기에 대하여 부당한 반덤핑조치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정부에서 이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로 하였다는 소식이 크게 보도되었다. 한국이 미국을국제기구에 제소한 첫 사례라고 한다. 미국에게 끌려 다니기만 하는 외교에 식상한 사람들에게는속이 시원할 수 도 있는 보도이다. 이제 한국도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고 은근히기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보도를 보고 걱정이 앞선다.
미국과 사이가 조금 나빠지는 것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민족통일이 미국의 지원없이 불가능하다. 과거 독일은 통일되기 전까지 미국의 호감을 사기위하여 극도로 조심하였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정부가 미국을 제소했다는 것은 그 만큼 문제가 심각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걱정이 되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간의 통상마찰이 시작된 것은 오래 전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을 제소했다는 것은 한미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는과거와 같이 무의식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생각 자체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 옛날과는 상황이다르기 때문이다. 과거 동서냉전이 지속되던 시절의 미국은 한국을 관대하게 취급하였다. 미국시장에는 수출을 하면서 미국상품이 한국시장에 들어 오는 것을 막고 큰 흑자를 내도 미국은 너그럽게 보아 주었다. 피를 흘리고 같이 싸운 관대한 우방국가라고 믿었던 미국이 몇년전부터 우리에 대해서 냉혹한 태도를 보여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가 미국에게 큰규모의 무역적자를 내고 있는데도 미국의 통상압력이 심하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변화는 미국으로서는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이끌던 미국이 세계 여러나라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던 시기가 있었다. 1970년대말까지는 다른 국가를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제국주의국가라는 비난을 곳곳에서 받았다. 이러한 시기에 한국은 미국에 귀중한 존재였다. 미국의 원조와 지원에 힘입어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한국은 미국이 제국주의국가가 아니라 좋은 나라이며 또 미국식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야말로 공산주의적 계획경제체제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던 것이다.그러나 공산권이 붕괴되고 소련마저 미국에 원조를 요청하는 사태가 전개되자 한국의 선전가치가갑자기 없어지게 된 것이다.
오히려 한국은 특별히 경계해야 할 제2의 일본으로 인식되기에까지 이르렀다. 얼른 들으면 일본과 같은 경제적 강국이 될 수 있다는 자랑스런 말 같지만, 자세히 보면 불공정한 무역을 행하는파렴치한 국가라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져 있다. 남의 시장에 와서는 마음대로 물건을 팔면서 자신들의 시장은 딱 닫아 걸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응징되어야 할 불공정무역국가라는 것이다.과거에는 일본이 그랬는데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에서 보는 한국의 상이 이렇게 변화된 것을 잘 알고 있을 정부가 강력한 보복을 각오하고 미국을 제소했을 것이기 때문에 걱정되는 것이다.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로 위상이 강화된다고 기뻐하기보다는 국제관계의 냉혹함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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