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출지 '蓮花정토' 장관" 장마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 먹장구름 사이로 맑게 갠 하늘이 설핏 얼굴을 내민다. 온통 열투성이인 대지에 습기 머금은 바람이 더욱 더위를 보챈다. 여름을 안은 남산. 짙푸른 풀잎하나, 이름모를 풀벌레 한마리에도 여름의 기운은 이미 깊숙이 들어와 앉았다. 계절마다 산은 얼굴을 바꾸지만 여름의 남산은 그 모습과 색깔, 산내음마저 확연히 달라진다. 남산 동쪽과 서쪽이 다르고,골과 골이 다르다.
여름 남산에는 새로운 생명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지난 계절동안 제 모습을 감추고 있다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솟아나는 생명들. 마치 숨어있다 세상을 놀래키기 위한 몸짓같다. 왕성한 생명력을키워온 탓일까. 자연의 변화가 신비롭기까지 하다.
해마다 여름이면 남산은 연꽃세계를 이룬다. 둥글넓적한 방패모양의 연잎이 한치의 틈도 없이 온통 물을 덮고 연화불국의 경지를 이뤄낸다. 사바세계에 내비치는 부처님의 자비가 연잎 모양일까? 연국(蓮國)을 가까이서 지켜보기 위해 신라 21대 소지왕의 유명한 전설이 전해지는 서출지(書出池)로 향한다. 경주와 포항을 잇는 국도에서 불국사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동남산기슭으로 접어들면 화랑연수원과 통일전이 차례로 눈에 들어오고 철와골 입구에 이른다. 골입구 남쪽에 있는안마을에는 큰 연못을 끼고 집들과 사찰이 처마를 마주하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형언할 수없는 평화로움….
이 동리의 큰마당과 같은 서출지는 여름이면 새로운 장관을 연출해낸다. 녹색융단처럼 수면을 뒤덮은 연잎과 그 사이를 헤집고 솟아오르는 연꽃들. 연화정토다. 큰 잎사이로 살포시 드러난 해맑은 분홍빛 꽃봉오리가 연지찍은 신부마냥 수줍기까지 하다. 수초끄트머리에 내려앉아 해롱대는꼬리푸른 잠자리들. 반쯤 물위에 떠 있는 이요당(二樂堂)의 들려올라간 추녀끝이 둥근 연잎과 조화를 이뤄내며 운치를 더한다. 여름이면 못둑에 해묵은 백일홍이 꽃을 피워 진분홍 꽃구름이 피어오르는 듯한 정경도 남산에서만 볼 수 있다.
아기자기한 폭포들이 제 소리를 내는 철도 이맘때쯤이다. 남산을 적시고 이골짝 저골짝에서 흘러든 빗물이 폭포수를 이룬다. 남산의 여러 골을 흐르며 정겨운 물화음을 내지르는 폭포와 여울. 한철을 소리없이 엎드려있다 억수같은 장맛비에 불쑥 일어난 폭포는 그 소리마저 힘차다. 오가리폭포, 백운폭포, 큰늠비골폭포, 철와골폭포, 용장골폭포….
인적조차 드문 동남산 깊숙이 자리잡은 백운폭포. 삼릉을 지나 봉계로 향하는 국도를 타고가다내남면사무소 부근의 백운교를 건너면 정씨(鄭氏)시조묘를 알리는 큰 입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도로로 접어들어 남산 남쪽기슭을 따라 1.5㎞정도 들어가면 집채만한 그늘을 드리운 노거수가 볼만한 노곡리가 나오고 여기서 1㎞ 정도에 외동가는 길과 갈라지는 삼거리가 보인다. 남산쪽 왼편길로 접어들어 6백m남짓 거리에서 처음 만나는 마을이 백운대마을이다. 마을에서 1㎞ 남짓 계곡을 끼고 산길을 오르면 한순간 적막을 깨는 요란한 물소리…. 고위산을 정점으로 고허성터를 가로질러 동남산 남쪽기슭으로 흘러내리는 백운골의 폭포다. 골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계곡주변의나무가 무성한 탓에 언뜻언뜻 흰 빛을 드러내는 물색으로 겨우 폭포를 감지한다. 골 중간에 나란히 걸터앉아 소리를 내지르며 작은 소(沼)도 만들어낸다.
남산은 부지불식간 연잎으로, 폭포로 그 섭리를 드러내는 자연의 땅이다. 이처럼 여름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정취에서 남산이 인간에게 들려주는 종교와 역사, 인생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남산의 수많은 탑과 불상, 절터도 바로 이같은 용솟음치는 자연에서 비롯된 조화의 세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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