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클래식 연주회. 꽉 끼는 넥타이. 주말에도 청바지와 티셔츠를 반납해야하는 심정은 착찹하다. 제목 대신 뜻도 모르는 음악용어와 번호투성이 팸플릿. '저걸 돈주고 사야되나' 입구에서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외국 노래들.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연주회장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그러나 '객석'의 무대는 다르다. 콘서트장만 가면 졸음운전을 하듯 희미해지는 의식속에 박수가 나올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필요도 없다. 뜻도 모르는노래를 듣느라 불편한 속내를 감추고 억지로 앉아있지 않아도 된다.
"청중과 코앞에서 만나는 진짜 '열린음악회'에 격식은 필요없을 것 같아 벗었습니다."객석의 콘서트에 처음 출연하는 테너 박범철씨(영남대 강사)는 연미복 대신 반팔 셔츠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공연 시작 전까지 손님들과 테이블에 마주앉아 담배를 피던 모습 그대로."이수인님의 '불타는 강대나무'를 부르겠습니다. 강대나무. 저도 나무종류인줄로만 알고 있었어요.얼마전 이수인님을 직접 뵈었는데 '백두산 폭발 때 생긴 나무 흔적'이라고 풀이해주시더군요. 고향을 그리워하며 통일을 기다리는 노래죠"
관객들은 연주보다도 출연자들의 설명에 더 진지하다.
"'죄수'는 푸슈킨의 이야기입니다. 푸슈킨이 외롭게 유배생활을 할 때 창문에 날아든 독수리 한마리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고 합니다. 강하지만 고독한 존재 독수리. 천재시인은 그 눈빛 속에서자신과 조국 러시아의 운명을 읽었습니다"
바리톤과 테너의 목소리가 번갈아가며 객석을 무겁게 눌렀다가 또 가볍게 들어올린다. 번역된 가사를 미리 들은 청중들은 비로소 편안하게 음악에 몸을 기댄다.
93년 8월 문을 열 때만 해도 '객석'은 평범한 고전음악감상실이었다.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들을 수있다는 점에서는 여느 카페와도 비슷하다. '녹향', '하이마트'와 더불어 대구에서 마지막 남은 고전음악감상실이지만 스피커 앞에 서서 정열적으로 지휘를 하던 손님들도 사라진지 오래. 젊은 사장 황원구씨(34)에게는 '객석'을 색다르게 만들 뭔가가 필요했다.
"콘서트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음악감상실로 썩이기에는 객석의 무대가 너무 아깝다는 반응이더군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오후7시30분. '살롱콘서트'라는 다소 낯선 무대가 마련됐다. 손님들은 3천원의 입장료만으로 2시간의 콘서트를 덤으로 즐긴다. 출연료 한푼 못받는 연주자들도 청중들을위한 해설준비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객석의 무대에는 친근감이 넘친다. '안단테 칸타빌레'로 연주되는 악보가 그려진 콜라잔에 얼음을 짤랑거리면서 다음 곡을 기다릴 수 있는 곳. 객석은 '안방'과 '콘서트홀' 사이에 다리를 놓은 셈이다.
'클래식과 친해지기'위한 객석의 노력은 예전에 벌써 시작됐다. 수요일 오후, 월·화·목요일 오전에는 클래식 음악강좌가 열린다. 그때는 음악을 전공한 황사장이 직접 무대에 오른다. "작곡자가 누구누구라는 정도의 지식만으로 클래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곡을 만들었는지, 주제부는 무엇인지, 전개방법은 어떤지를 알고난 뒤에 다시 들어보세요. 음악에 몰입할 수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강좌에 임하는 처음 한두달 간은 론도다, 소나타 형식이다 생소한 음악용어를 익히느라 다소 고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깊어지는 음악의 매력앞에서 그다지 높은 벽은 아니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늙은(?) 학생들도 이제 "코데타로 넘어가는 부분에 쓰인 악기가 뭐죠?"정도의 질문을 서슴없이 던진다. 베토벤이 교향곡 1번을 작곡하기 전에 만들었던 20여개의 교향곡들은 왜 1번이 될 수 없었을까. 때론 쇼팽의 진부한 작곡방식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음악을 듣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피아노를 8년이나 친 딸애도 엄마의 음악감상법에 경탄을 금치못해요" 월요일 주부반에 나온지 1년5개월째인 성은희씨(44)의 말이다.
언제부턴가 클래식은 우리에게 어렵고 고상한 것이 돼버렸다. 어렵다보니 잘 몰라도 '고상할 것만 같은' 것이 됐다고 해야 옳겠다. 그러나 친해지지 못하면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연주회장의딱딱한 분위기가 음악감상을 방해한다면 과감히 벗어버리자. 팸플릿 대신 찻잔을 사이에 두고 연주자와 마주하는 것은 또 어떨까. 편안한 친구를 만나듯 객석의 문은 그렇게 두드린다.〈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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