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처럼 조사결과 발표와 기자회견을 실시하게 된 것은 이들이서울에 도착한후 2개월여에 걸친 당국의 1차조사가 완료되어 그 결과를 국민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여러가지 궁금한 사항에 대하여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먼저 황장엽씨와 김덕홍씨의 신원사항에 대해 말씀드리면 황장엽씨는 1923. 2. 17 평남 강동에서출생하여 46년 조선노동당에 입당한후 49년부터 53년까지 모스크바대학에서 유학하였고 귀국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최고인민회의 의장, 주체사상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97. 2 망명당시에는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와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등을 맡고 있었습니다.그의 가족으로는 처 박승옥과 1남 3녀가 있으며 중앙당비서급 간부들이 거주하는 평양 보통강구역 서장동 소재 단독 가옥촌에서 생활해 왔습니다.
한편 김덕홍씨는 1939. 1. 22 평북 의주에서 출생하여 64년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한후 동 대학교무부 지도위원으로 재직하다가 81년부터 노동당 주체사상연구소에서 근무하였으며 94년이후 노동당 중앙위 자료연구실 부실장, '국제주체재단'이사겸'여광무역연합총회사'총사장으로 있었습니다.
그의 가족으로는 처 박봉식과 1남3녀가 있으며 노모와 함께 평양에서 거주해 왔습니다.이들 두사람의 관계는 65년 황장엽씨가 김일성대학 총장으로 부임하면서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30여년동안 친분관계를 유지해 오는 사이로서 황장엽씨는 자신이 책임을 맡고 있는 '주체사상연구소'의 활동자금 조달을 위해 94. 2 '국제주체재단'을 설립, 김덕홍씨를 지역책임자로 북경에 파견하였고 '국제주체재단'은 '여광무역연합총회사'라는 위장명칭으로 해외교포대상 기부금 모금, 무역중개, 남한기업인의 재북가족 상봉 등 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김덕홍씨는 북경에서의 활동기반을 발판으로 96.7 황장엽씨로부터 망명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아 이를 추진해왔습니다.황장엽씨가 망명하게 된 동기는 김일성 사망(94. 7. 8)후 모든 실권을 장악한 김정일이 극심한식량난을 아랑곳하지 않은채 전쟁준비와 주민 탄압을 자행하는데 염증을 느끼고 주민들을 기아에서 해방시키고 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김정일 정권이 망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속수무책인 현실을 개탄해 오던중 96. 2 모스크바대학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 북한 주체사상선전을 소홀히 하였다는 일부 당간부들의 비판으로 인해 96. 5 김정일로부터 책임 추궁을 받고실망과 환멸을 느낀 나머지 전쟁노선 포기와 개혁.개방을 촉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려는생각까지도 했었으나 김정일 독재 전횡과 전쟁준비 상황을 세계만방에 폭로하고 조국통일에 일조하겠다는 신념에서 망명을 결심한뒤 김덕홍씨와 동 문제를 협의해 오다가 지난 2월 동경 국제주체사상 세미나에 참석차 일본을 방문(1. 30∼2. 11)한 후 북경에 도착(2. 11), 평양으로 귀환하는과정에서 2. 12 김덕홍씨와 함께 우리 북경대사관 영사부를 찾아와 망명을 요청하게 된 것입니다.
요컨대 황장엽씨의 망명 결행에는 김정일 독재체제에 대한 염증, 독재체제에 동조해온 양심의 가책, 그리고 전쟁을 막고 민족의 장래에 기여하려는 신념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들의 망명후 해외체류 경과는 우리 북경 영사부에서 34일간 머문뒤 제3국을 거쳐 서울로 송환해 줄 것을 희망하는 중국의 입장을 감안하여 3. 18 필리핀 '바기오'지역으로 옮겼다가 4. 20 필리핀 특별기편으로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국내입국 이후 이들은 안기부가 마련한 안가에서 생활하면서 조사에 적극 협조해 왔으며 안기부의 주선으로 국내동창, 시인, 귀순자등과 면담한데 이어 각종 산업시설과 시장.백화점 등 생활현장을 돌아보고 "남측이 잘 산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발전된 줄은 정말 몰랐다"면서 '민족적 자긍심'을 느낀다는 감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안기부는 이들에 대한 완벽한 신변보호 조치를 강구한 가운데 철저한 조사를 실시해 왔습니다.조사는 이들의 심리적 안정을 바탕으로 자발적인 협조를 유도하는 가운데 안기부의 북한문제 전문 고위간부들이 직접 참여하여 체계적이고 심도있게 실시하였습니다.
한편 통일원.외무부.국방부 등 정부관계부처의 요청사항에 대해서는 조사결과를 통보해 주는 형식으로 협조체제를 유지하였고 특히 주요 관심사항에 대해서는 관련부처 고위관계관들이 이들을직접 면담, 확인토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방국인 미국에 대해서는 북한관련 정보를 공유해온 관례에 따라 정보협력 차원에서 면담을 허용하고 필요한 사항에 대해 확인토록 한 바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조사는 북한의 정치.경제.사회.군사.외교 분야및 남북관계 등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실시하였고 특히 북한의 전쟁준비 실상과 도발의지, 김정일의 군부장악 정도 및 측근인물, 정책결정 체계, 북한의 경제및 식량난 실태, 대남전략, 통일문제 등 중요 정책적인 사항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아울러 망명동기, 위장망명설, 사상문제 및 이른바 '황장엽리스트'등 국민적 관심사를 규명하는데도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황장엽씨는 그간 북한의 권력 상층부에 있으면서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내용을성실하게 진술하였습니다.
다음은 몇가지 관심사안에 대한 조사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황장엽씨의 위장망명설에 관한 사항입니다.
안기부는 이 문제의 중요성에 비추어 의혹이 갈만한 부분인 망명동기, "귀순도망명도 아니다"라는 입국시 발언내용, 망명 결심에서부터 결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등에 대해 면밀히 조사한 결과위장망명으로 판단할 만한 사항이 드러나거나 확인된사실이 없음을 밝혀두는 바 입니다.다음은 황장엽씨의 사상전향 문제입니다.
황장엽씨는 60년대 후반부터 막스.레닌주의의 변증법 원리와 인간 중심의 철학적 원리를 접목시켜 주체사상을 이론화하기 시작하였으나 74년 김정일이 주체사상을 김부자 우상화 논리인 혁명적수령관에 결부시키며 독재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자 사상적 갈등과 환멸을 느끼게 되었으며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에는 자신이 본래 구상했던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이론적 오류와 현실적 한계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와함께 북한 공산체제로는 민족의 발전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확신하에보다 자유롭고 번영된 대한민국에 대한 동경심을 포지해 왔으며 더욱이 국내 입국이후 남한의 발전상을 직접 확인하면서부터는 북한 공산체제는 몰락할수 밖에 없다는 확신과 함께 주체사상에대해서도 실패를 자인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황장엽씨는 북한 공산독재체제를 거부하고 자유민주 체제인 대한민국으로의 망명의길을 선택하였고 그동안 주체사상을 통해 김부자 체제보위에 앞장서 온데 대해 깊은 자책감을느끼고 있어 더이상 사상전향 여부를 논할 필요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다음은 이른바 '황장엽리스트'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황장엽씨는 "북한의 지하조직이 상당수 남한에 침투해 있으며 남한 내부동향에 대한 보고서가 김정일에게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나 "남한에고정간첩 5만여명이 암약하고 있다"든가 "명단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은 누구에게도 언급한 바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조사과정에서 이른바 '리스트'같은 것을 별도로 제시하지는않았습니다.
그러나 황장엽씨는 대남 공작부서에서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세월동안 북한고위층의 지위에있으면서 득문한 북한의 대남공작 관련사항과 평양및 해외체류시 접촉했던 국내외 인물등에 대해 진술한 바 있습니다.
이에따라 안기부는 황장엽씨의 이러한 진술내용과 관계당국에 존안된 각종 정보자료를 토대로 대공수사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를 추적중에 있습니다. 그 결과 대공혐의가 밝혀지는 대상에 대해서는 당연히 소정의 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해 나갈 것입니다.
이어서 황장엽씨의 향후 활동계획에 대한 정부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북한 이탈주민 보호및 정착지원법'의 규정을 기준으로 하되 본인의능력과 기여정도에 따라 대우하면서 필요한 지원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향후 활동문제는 통일에 기여하겠다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연구에 전념토록 배려하면서 대결론적으로 이들의 망명은 북한이 지난 수십년간 지탱해온 주체사상이라는 이념적 토대가 붕괴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서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지도층에서 자성과 함께 커다란 변화를 촉구하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각종 정보를 생생하게 증언함으로써 북한의 실상과 김정일 정권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제공한 중요한 정보사항에 대하여 일일이 밝히지 못하는 입장을 이해해 주시기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이번 황장엽씨 망명사건을 계기로 북한이 하루빨리 무력적화통일노선을 버리고 개혁.개방이라는 시대적 조류에 동참해 나오기를 촉구하면서 오늘 공개 기자회견을 계기로 이들의망명과 관련하여 항간에 나돌던 근거없는 루머와 불필요한 억측이 해소되고 황장엽씨 일행 망명의 올바른 의미가 국민들에게 잘 전달되어 우리가 처한 안보현실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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