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결인 듯 고즈넉한 오솔길 수리부엉이 한쌍 '후드득'" 잔뜩 찌푸린 하늘. 가는 빗줄기에다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땀에 옷이 눅눅해진다.여름 산사의 고즈넉함을 느껴보기 위해 미륵골 보리사에 들렀다 포석골 부흥사로 걸음을 옮긴다.가는 길에 장맛비에 넘쳐날 포석암반도 함께 볼 욕심으로 남산전망대로 난 널찍한 등산로를 벗어나 소롯길로 오르다 갑작스런 한쌍의 부엉이의 출현에 갑자기 맥박이 빨라졌다. 천연기념물 324호 수리부엉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보기 드문 텃새로 알려져 있다. 1백50cm도 훨씬 넘음직한긴 날개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나온다. 60~70cm가량 큰 몸체에 맹금류의 위엄이 서려있는우각(羽角)이 한눈에 들어온다. 야행성이어서 흔치 않은 볼거리다.
낮인데도 먹이를 찾을 요량인지 앞이 툭 트인 암벽에 꼼짝없이 앉아 수상한 눈초리로 이방인을경계하며 연신 고갯짓을 해댄다. 찰칵찰칵 계곡을 울리는 사진기자의 카메라 셔터소리에도 아랑곳없이 꼼짝않고 노려보고 있다 볼일이 생겼는지 후드득 순식간에 공중으로 박차오른다. 갓 부화한 새끼를 먹이기 위해 암수가 먹이를 물고 부지런히 둥지를 오가는 시기가 바로 이맘때라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쏜살같이 골 어귀로 날아가는 수리부엉이의 뒷모습에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아참 여기가 부엉골이지'라는 목소리에 퍼뜩 제 정신이 든다. 왠지 모를 서운함이 빠르게 온몸을 훑고지나간다. 서로 예정하지 않은 우연한 조우여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 걸까…. 자연다큐멘터리에서나 봤음직한 수리부엉이를 짧은 시간이나마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는 뿌듯한 느낌은 간 곳 없다.평일에다 장마탓인지 부흥사 경내는 그지없이 고요하다. 처마에 듣는 빗물소리, 고승의 독경소리처럼 주절주절 낮게 흘러내리는 여울소리에 산사의 여름은 짙어만 간다. 건성으로 경내를 한바퀴휙 돌아보고 나서니 정연하게 빗질된 대웅전 앞뜰의 부도탑이 눈을 찌른다. 탑신은 간 데 없고마당에 곱게 엎드린 네모지붕만 외로이 비에 젖고 있다. 무심한 세월의 무게에 못이겨 제 모습을온전히 지키지 못한 숱한 남산의 유물유적들. 하지만 철마다 색을 바꾸며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남산의 자연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으리.
산을 내려오는 길에 남산 서쪽어귀 선방골 삼불사(三佛寺)에 찾아들었다. 배리삼존불을 모셨다해서 삼불사로 이름했으나 원래 이곳은 선방사(禪房寺)터로 알려져 있다. 절어귀에서 마주친 젊은일본인 여자관광객들의 재잘거림이 귀에 거슬린다. 많은 남산의 유물들이 일제시대에 도난당하고훼손된 이유때문일까.
삼존불로 곧장 가지않고 틈새에 짙푸른 이끼가 잔뜩 끼인 돌계단을 밟아 먼저 경내로 향했다. 활달한 필체로 새겨놓은 입석이 객을 반긴다. 세심단속(洗心斷俗). 이러저런 복잡한 심사를 알아차렸음일까. 마음을 가다듬고 돌계단을 막 올라서니 절마당에 핀 보라빛 도라지꽃이 활짝 반긴다.올망졸망 피어난 꽃두름이 낡은 삼층석탑과 어우러져 색다른 풍경을 연출해낸다. 어느 절에 가봐도 탑과 꽃이 한자리에 서 있는 모습은 좀체 볼 수 없다. 절치곤 작은 규모에다 여염집같은 온화한 분위기가 낯설지 않다.
온갖 동식물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남산의 여름. 아무렇게나 피어나고 날아다녀도 남산은 이들을 넉넉한 품으로 보듬어준다. 성마른 인간이 미처 깨닫지 못한 자연의 섭리일까. 마음을 정하게씻을때 비로소 가슴에 와닿는 산. 남산의 여름풍경은 무지개빛이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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