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慶州 남산-산악숭배 사상

"계곡에 우뚝솟은 비파암 천년풍상에도 침묵만…" 신라인에게는 산에 산신이 있었다. 산을 주재하는 신을 잘 받들어 모셔야 나라가 태평하다고들믿었다. 통일신라시대 산악숭배사상의 모체였던 오악사상(五岳思想). 동악 토함산, 남악 지리산,서악 계룡산, 북악 태백산, 중악 팔공산 . 이들 산에 신이 있어 백성을 보살피고 어우른다고들 생각했다.

그러나 삼국시대 신라의 오악은 동악 토함산, 남악 남산, 서악 선도산, 북악 금강산, 중악 낭산이었다. 모두가 경주에 있는 조그마한 산들이다.

이제 남산을 통해 티끌만한 산악숭배사상의 끝자락이라도 더듬어 보도록하자. 지루한 장마끝 오랜만에 맑은 햇살이 고개를 삐쭉 내민 비파골. 골입구는 시인 박노해가 갇혀있다는 경주교도소를9백여m 지나 비파마을에서부터 시작된다.

산등성이를 얼마 지나지 않아 촉촉이 배어오는 땀. 속옷이 흥건할 정도로 마주 흘러내리는 땀을주체치 못해 엉거주춤 휴식을 취한 산능선. 골아래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어찌 이리 고마울까.산 깊숙이 들어서자 나무 아래 음지 곳곳에 수줍은 자태를 감추고있다. 솔가리가 땅에 깔려 옮기는 걸음마다 솜이불을 밟는 기분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갑자기 펼쳐지는 서늘한 풍경. 짙푸르러야 할 남산 비파골의 여름은 온통새까맣다. 지난 2월 산불때문에 남겨진 남산의 징그런 흉터자국이다. 바위마저도 까맣게 타 표면이 잘게 부서져있다.

나무들마다 검은 숯덩이의 발가벗은 몸을 내밀고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있다.그러나 모질게 이어온 생명의 신비. 불에 검게 그을린 소나무에 솔잎 싹이 움텄다. 마치 피눈물처럼. 일부 소나무들이나마 그 척박한 환경을 뚫고 환생에 성공한 것이다.

비파골에서 갈라지는 두갈래 길. 오른 편 잠늠골을 따라 10여분을 걸었을까.계곡 왼편에 우뚝 고개를 쳐든 비파 암. 진신석가가 계셨다는 바위다. 비파암은 화마의 상처로 바위 곳곳에 그을음을안고있지만 그 큰 눈망울은 산아래 배반평야를 내려보고 계신 듯하다.

효소왕이 말석에 앉은 남루한 옷차림의 스님에게 재에 왕과 함께 참석했다는 말을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말라 는 핀잔을 주자 폐하께서는 진신석가를 공양했다는 말씀을 하지 말라 라 대꾸한스님은 진신석가로 몸을 바꿔 바위속에 몸을 숨겼다는 전설이 내려오고있다. 바위와 부처를 일체화시킨 사상. 산악숭배사상의 한 갈래다. 어디 그뿐인가. 경흥국사가 호사한 차림으로 말타고 다니는 것을 꾸짖은 문수보살이 남산에 몸을 숨긴 문수사. 위치가 어디인지 찾긴 힘들지만 역시산악숭배의 징표들이다.비파암이 있는 산등성이 윗자락에는 많은 기와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이곳이 효소왕이 진신석가를 몰라본 죄를 빌기위해 지은 석가사터이다.지금도 진신석가의 은은한 울림이 들려올 법도 한데 천년의 세월은 그저 침묵으로 일관할 뿐. 계곡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끝자락에 이름모를 탑재들이 덩그렇게 놓여있다.이제 손끝모아 이별의 합장. 내려오는 산행은 고달프기만 하다. 골짜기 모두가 산불로 숯검정이가 된 탓에 산행하는 사람도 연탄 배달부 모습이 돼버린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계곡이 맑디 맑은 약수를 마구 토하고있다.검은 재가 묻은 손과 팔뚝을 씻고 땀범벅이 된 얼굴을 물속에 쳐박는다. 벌컥벌컥 물을 마시며 기나긴 갈증을 적신후에야 비로소 남산이 여름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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