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통령 공모'와 네번째 실수

평생동안 열네번 선거에 출마했던 윈스턴 처칠은 '한번 선거를 치를 때마다 수명이 한달씩 감수 했다'면서 '하찮은 말싸움 때문에 14개월을 헛되게 보낸걸 생각하면 우울해진다'고 술회했다. 실 제 그가 선거바람에 1년2개월을 덜 살았는지 알수는 없지만 선거라는게 사람의 진(津)을 빼는 짓 임은 분명한 것 같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신한국당 경선도 수명이 줄어드는 진빠지는 싸움끝에 여섯마리의 '이무기 '들을 진흙웅덩이에 남겨둔 채 한마리의 용을 골라 승천코스에서 올려 놓았다. 국민들은 이제 좋 든 싫든 여당 대의원들이 뽑아놓은 용을 놓고 승천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게 됐다. 대의원들의 생각과 판단에는 용이라고 뽑았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이무기로밖에 보이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등장할 또 다른 야권의 용들과 견줘놓고 가릴 수밖에 없다. 험난한 승천의 싸움은 정작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DJP등 노련한 노룡(老龍)들과의 싸움만이 아니다.

앞으로 재야권등에서 얼마나 더 많은 용들이 나타날지 모른다. 벌써 신흥 재야단체에서는 닷새후 에 범국민적인 대통령후보를 뽑아 용들의 전쟁에 내보내겠다는 공개성명을 냈다. '대통령 후보 공개모집' 광고를 낸 단체는 나라의 개혁을 위한 창당(創黨)을 선언한 가칭 '민주국 민 연합'이란 단체. 교육계·종교계·상공인대표와 농어민·근로자·체육계 대표, 여성계·법조계 ·청년·노인 대표 등 총 1천2백71명의 인사들이 26일까지 대통령후보 추천을 받겠다는 공개공고 를 낸 것이다.

그들 말대로 단군이래 사상 최초의 '대통령 공개모집'이다.

25일까지 추천마감이고 26일 자격심사에 들어간다.

과연 어떤 용이 공개모집에 추천될지 모르겠지만 눈길이 가는 대목은 '공모'라는 이야깃거리가 아니라 그들이 제시한 대통령후보 심의기준 항목이다.

21세기 대통령감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제시된 기준은 모두 14가지였다. '무한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 미래의 통찰력을 가진 사람, 뛰어난 국제감각과 세일즈맨의 실력을 갖춘 사람, 그리고 외교력과 최고의 지식·지혜·풍부한 아이디어를 지닌 최고의 도덕가, 외국어 4~5개 능통한 실력, 위기관리 능력과 결단력이 뛰어난 사람, 마지막으로 지역감정을 유발하지 않 고 법을 철저히 지키며 평판이 별같이 깨끗한 사람'이다. 구름잡는 식의 이상론인 것 같지만 어 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정말 이시대의 최고지도자가 반드시 갖춰야할 덕목이다. 오늘 뽑힌 신한국당의 후보는 14가지 덕목중 몇가지나 제대로 갖추었을까. 후한 점수를 줘도 C학 점 정도? 항목에 따라서는 F학점을 받을 부분도 없잖다. 지난 경선의 혼탁했던 이미지가 너무 강 하게 남아서다. 그러나 이제는 훌훌 털고 새로운 용들의 이미지를 만들어야할 때다. 이번 '대통령 공개모집'은 모든 후보가 지향해야 하고 스스로 비춰봐야 할 덕목지표를 제시했다 는 점에서 의미를 던져주었다.

냉장고나 TV는 순간의 선택이 잘못돼도 10년만 불편하면되지만 대통령 공모와 선택을 잘못하면 나라의 반세기를 좌우하게 된다. 이제부터 눈을 크게 떠야 할 쪽은 대의원이나 창당발기인이 아 닌 국민들이다. 전·노·김에 이은 '네번째 실수'를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만은 '대통령공모'의 덕 목을 깊이 새기면서 눈을 똑바로 뜨자는 얘기다. 나쁜 실수는 세번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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