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물러선뒤 곧장 들이닥친 염천(炎天). 각급 학교가 일제히 여름방학에 들었다. 더위는 아랑곳없이 마냥 신나는 방학을 궁리하는 초등학생들. 즐거움에 겨워 배시시 웃음마저 배어나오는 앳된 얼굴에 기세좋은 무더위도 손을 들 지경이다.
지하철 1호선 공사가 막바지에 접어들어 어수선한 한낮의 중앙로와 반월당. 어머니의 손을 잡고아동서적코너에 몰려온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났다. 교과서만 봐오다 화려하게 그래픽 처리한 갖가지 책표지를 보고는 모두 눈이 휘둥그래진다. 무엇을 읽을까, 어떤 책을 사달랠까 요기조기 책장을 넘기는 작은 손들이 바쁘다. 이것저것 한껏 책욕심부리며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는 아이들. 왁자지껄 한바탕 소동이 벌어져도 별반 성가시지 않다. 서점이기 때문일까.
"평소에도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가 집근처 서점에만 가면 소식이 없을 정도로 책에 푹 빠져있다"고 고민하는 주부 김영희씨(38·중구 봉산동). 자신이 보기에 지나친 딸의 독서열에 오히려 김씨는 마음이 무겁기까지하다. 영상매체가 모든 것을 차지해버린 요즘 시대에 그래도 아이들의 건강한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공간은 서점이 최고. 이 때문인지 각 서점마다 아동서적코너를 큼직하게 마련해두고 있다.
개점시간부터 줄곧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책읽기에 열중인 중고생들의 모습도 서점의 신풍속도다. 서거나 기대거나 때로 쪼그리고 앉아 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이들에겐 어떤 시선도 소란도 별세계의 일이다. 하루종일 코앞에 책을 들이대고 있는 독서중독자(?)들…. 무엇이 이들을책에 열중하게 만들까.
작열하는 태양의 기세가 조금 숙지는 퇴근무렵 일대 서점에는 책을 찾아온 학생, 직장인등으로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낮부터 시원한 냉방기 세례에 흠칫 몸앓이마저 치는 책꾼들도 더이상느긋한 독서삼매를 즐기기는 무리라는 것을 깨닫는 시점도 이 무렵부터다. 이제 서점은 만남과모색의 공간으로 꿈틀댄다. 친구나 연인과의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잠시 서점에 들린 이들에서부터 5백원부터 3천원까지 깎아파는 재고할인도서를 찾아온 실속파까지 다양한 얼굴과 책과 열기가 공간을 가득메운다. 80년대까지만해도 도서관과 함께 앎에 목말라하는 가난한 학도들의 무한한 지식창고였던 서점. 그때 지식을 향해 고민하던 절박한 사정도 이제는 경제성장과 생활의 여유로 점차 그 풍향이 달라지고 있다.
중앙로 거리를 따라 여기저기 자리잡은 대구의 주요 서점들은 요즘 지하철 개통에 때맞춰 매장을재정비하느라 분주하다. 공사에 따른 유동인구 급감으로 몇년동안 속앓이를 했지만 이제는 형편이 나아질거라는 기대에 언뜻 활기가 보인다.
중앙파출소앞 본점과 반월당점 두곳에서 영업해온 제일서적. 지하철 중앙로역 입구의 옛 로얄호텔 빌딩을 새로 단장해 '제일문화프라자'라는 이름의 복합서점공간으로 한창 탈바꿈시키고 있다.매장면적만도 7백평규모인 대구 제1의 서점공간으로 서점, 문구, 완구, 학원, 휴게실등 복합공간으로 꾸며 곧 문을 열 예정이다. 길건너편 학원서림도 매장면적 4백평규모의 신축 3층빌딩과 연결시켜 중앙로 도로변으로 매장을 넓히는 공사를 벌이는등 지하철시대에 대비하고 있다."지난 몇해동안 마음고생은 말할 수 없어요"라는 서점 관계자들의 한마디는 그동안 고객을 잃어버렸던 시내 서점들의 고충이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다. 인근 상권과 많은 유동인구로 크고 작은 서점들이 밀집했던 중앙로. 지하철과 더불어 이제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다.〈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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