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자구요" 겉보기에 내 삶은 나른한 권태속에 가라앉은 한폭의 정물화 같다. 아니, 그저 단위화된 길이와 넓이만 있는 평면도형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깊이는 어디에 있는가. 뛰는 심장과 흐르는 피의 고뇌들이 담길 저 입체 공간은? 소프트웨어의 회로도에는 영원히 거부된 저 비밀스러운 영역은?
그러나 이것은 불안과 대면하는 나의 치열함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들이다. 타인의 눈에 어떠한모습으로 비치든 내삶을 뿌리에서부터 완강하게 흔들어놓는 저 심원한 정서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되어본 적은 없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한때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충고처럼 시간표를 짰고 논리학을 배웠으며 예의범절을 익혀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런 방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불안이 아니라 기껏해야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덧없는 열정들뿐이었으니까.
할수있는 것은 '받아들이기'뿐
철학자 하이데거에 따르면 불안은 끈끈이풀로 만들어진 파리통같은 것이다. 숙명처럼 그 안에 갇히게 된 인간은 아무도 그것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어쩌다 잊고 어쩌다 가려질 뿐이다. 그러므로 저 햇빛 쏟아지는 오후의 권태같은 안정이야말로 턱없이 꾸며진 기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불안과 불화하고 거절하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껴안고 화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상성에 끝없이 저항하며 모험과 도전의 세계 안으로 들어서는것이다.
스페인 철학자 우나무노는 그의 책 '돈키호테와 산초의 일생'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확실히 세상에는 돈키호테가 산초로하여 다시 그의 안락한 생활을 버리게하고 그의 평화스러운 직업을 떠나게 하고 또 헛된 모험을 추구하기 위해 처자를 버리도록 결심하게 한데 대해 돈키호테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케함으로써 그의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정열을 돋우어 주어야 한다.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불안을 느끼도록 해야하며 비록 그 노력의 목적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확신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하나의 강력한 동경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우리는 산초를 그의 고향으로부터 꾀어내야 하며 그로 하여금 모험을찾아 집을 나서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를 해방시키는 유일한 내면의 정열
그렇다. 우리는 꾀어내고 부추기고 몰아세워야 한다. 그러나 먼저 산초가 아니다. 누구보다 먼저우리 자신을 저 견고한 일상의 질서로부터 끌어내어 불안속에서 간단없이 흔들리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불안은 마침내 우리가 절망속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심리적 원인이 아니라 기호화되고 코드화되어버린 일상의 세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내면의 정열이다. 그러니우리는 불안속에서 충분히 동요하며 그것은 견디어내야 하고 버티어내야 한다. 그 속에서 파닥거리고 부딪치고 휘청거리는 몸부림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그 마땅한 깊이와 풍요성에로 이끌어가는힘들인 것이다.
나는 안정된 일상에 주저앉아 어떠한 모험도 거부하는 저 비참한 삶들을 경멸한다. 일과표대로계획하고 논리학대로 말하고 윤리학대로 행동하며 견고한 질서속에서 행복하게 살고있는 저 근엄한 부르주와들의 삶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 검은 나비 넥타이를 맨 채 불길한 미소를 지으며 얌전하게 서 있는 저 장의사 주인말고 또 누가 있다는 거냐.
그렇다. 산초가 아니다. 이제 우리 자신 안에 잠들어있는 방랑의 영혼을 일깨워야 한다. 그래서이제는 전설이나 신화처럼 멀어져버린 저 모험의 세계 속으로 나서도록 끝없이 부추켜야 한다.〈부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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