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잊지못할 '피서지에서 생긴일'

"여기는 무인도 나는야 로빈슨 크루소"

피서지에서 생긴일.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렌다. 매년 나서는 피서지만 매년 새로운 느낌과 감흥이 기다린다. 그래서 피서의 즐거움이 더욱 커지는지 모른다. 잊을 수 없는 피서의 기억들을 모아봤다.

◈작음섬의 신선놀음-김인기(34)

피서도 개성이 중요하다는게 나의 체험에 바탕한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무인도에서 보낸 91년 피서를 잊을 수 없다.

행선지는 서해의 사승봉도 에 딸린 무인도. 인천에서 배를 타고 가도 2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섬이다. 한 예술단체가 주관한 여름캠프의 일원으로 참여해 유익한 강의도 듣고 책도 읽고 해수욕도 즐기니 신선이 따로 없었다. 사흘째 되는 날 늦은 오후, 섬의 뒤편에 위치한 아담한 모래밭에 혼자 누워있자니 내가 바로 로빈슨 크루소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그래서 수영복을 벗어버린채 얕은 파도에 몸을 담그고 누워 하늘을 바라 보길 1시간. 바다와 해와 모래사장과내가 하나가되는 합일의 평화를 느껴 보았다. 이 한 시간의 추억은 세월이 흘러도 잊을수가 없다.또 마지막날 달밤이 흐르는 해변에서 노래 이어부르기를 하던중 온몸으로 톰존슨의 히트곡을 메들리로 열창하던 소설가 이씨의 기억도 아직도 생생하다. 섬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사연이 많았다. 태풍주의보가 발령돼 회항도중 인근섬에 피신했다가 해군의 도움을 얻어 간신히 회항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지금도 간혹 일에 짜증이 날때면 무인도 해변에서 알몸(?)으로 느낀 그 편안함과 여유를 생각하곤한다.

◈빛고을의 무등산-정현수(31)

지난해 여름휴가를 보낸 곳은 광주의 명산이라는 무등산이었다. 친구들과 무등산을 오르다 광주출신 아가씨 두명을 만나 동행하게 됐다.

대구총각과 광주아가씨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건 자체가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러한 기분이 무참히 깨진 것은 무등산 등반후 발생했다. 등산만으로 아쉬워 광주에서 차를 한잔 하자고 한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대구의 동성로쯤 되는 광주의 금남로. 마땅히 주차할 곳이없어 우체국 주변에 차를 세워놓고 아가씨들과 커피숍을 향했다.

카페에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정이 다 돼서 나와보니 차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이 순간 광주에 대한 소문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아뿔사! 그러나 이러한나의 걱정은 빗나갔다. 관할 파출소에 들러 차를 견인시킨 경관을 만났다. 알고보니 내가 주차시킨 곳이 우체국으로 들어가는 통로여서 마땅히 견일될 만한 일이었다. 그 경관은 대구 차량이었기 때문에 바로 견인시키지 않고 30분 동안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벌금은 청구하지 않겠다며자리를 몰라 엉뚱한 곳에 주차한 것 같은데 미안하다 며 도리어 사과를 하는것이었다.지난해 피서는 나에게 특정지역에 대한 선입견을 고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북경 천안문광장-이소영

97년 휴가는 어디로 갈까 궁리하다 평소 친하던 직장동료와 함께 중국에 가기로 결정했다. 휴가기간이 홍콩의 중국반환일이 조금 지났기 때문에 축제의 중국모습을 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지하철과 택시를 번갈아 타면서 천안문 광장에 도착했을때의 그 설렘. 이곳이 바로 말로만 듣던천안문 광장인가! 천안문 광장주변은 네온사인과 밀려드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태어나서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모인 것은 처음 보는 것같았다. 일행끼리 손을 잡지않으면 서로를 놓칠것만 같았다. 우리는 손에 땀이 나도록 꽉 잡고 다녔다. 천안문을 둘러보고 우리들은 북경에서 괜찮다는 클론이라는 호텔 나이트클럽에 가기로했다. 우리의 춤솜씨를 중국에 선보여주자는 거창한 계획이었으나 이런 야무진 꿈도 잠시. 나이트클럽에 들어선 순간 천안문처럼 사람들로 넘쳐 발디딜틈이없었다. 아쉬움을 남긴채 우리는 클론 호텔옆 숯불에서 구워내는 꼬치를 4명이 1백개 넘게 먹어치웠다. 중국의 변화를 실감할수있는 휴가였다.

◈시골해변 고향집-이종우

휴가철이면 우리가족은 늙으신 아버지 어머니가 지키고계신 시골집을 찾는다. 물론 아내와 아이들도 대 찬성이다. 포항 월포리 근처인 고향집에 들어서면 나는 부모님이 미처 하지못한 담장 무너진 곳, 집안의 손볼 곳을 먼저 본다. 아내는 부엌으로 가서 어머니가 쪄주신 감자를 먹으며 고향의 푸근함을 맛본다.

아이들은 고향집에 피어난 봉숭아꽃을 보고 하늘의 뭉실뭉실 올라가는 구름을 대청마루에 누워보곤한다.

고향을 찾는 즐거움중에 빼놓을수없는 것이 고향친구들을 만나는일. 아이들과 친구들과 함께 배를 띄워 바다로 나가서 고기를 잡노라면 아이들은 고기를 걷어올리는 모습에 신이나서 시간가는줄도 모른다. 고기와 함께 게가 올라오면 게다! 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고향에 휴가 오기를참 잘했다는 마음이 절로든다.

이렇게 놀다 집에오면 된장끓이는 냄새가 더욱 짙다. 찐 호박잎으로 쌈을 싸서 어머니에게 한잎권할때의 기분이란 어떤 피서지보다 행복하고 편안하다. 더구나 고향조차 잘 가보지 못한 차남인지라 효도하는 기분도 함께 든다. 휴가는 고향의 집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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