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속의 과학-아폴로13

"실패한 신화의 보상" 1970년 4월10일. 미국의 막대한 투자와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속에 달 탐사의 사명을 띤 아폴로13호 발사. 운항중 기계선의 산소 탱크 고장으로 6일만에 귀환

그리고 25년후. 실패한 우주 왕복선 아폴로13호 이야기가 아폴로 13호 라는 영화속에서 재현되었다.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고 미국의 국가적 자존심마저 상하게 했던 우주왕복선 이야기가 왜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재현되었을까.

60년대 우주개발 사업면에서 소련으로부터 수모를 당해야 했던 미국의 케네디는 미항공우주국(NASA)으로 하여금 소련보다 앞서 달에 착륙할 유인 우주선과 그것을 쏘아 올릴 대형 로켓을개발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아폴로 계획 이다.

1967년 아폴로 우주선과 세턴 5 형 로켓이 완성되었고 그 후 10여차례의 시험비행끝에 아폴로11호가 암스트롱과 올드린 그리고 콜린스를 태우고 지구를 출발하여 달 표면에 착륙하는데 성공한다. 아폴로 우주선은 우주 개척이 상징하는 국가적 자존심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개척자정신을 고스란히 담은 미국의 신화가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배후에는 대륙간탄도유도탄(ICBM)개발을 위한 실험이라는 군사적인 목적이 숨어있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정책적인 선전도 맞물려 있었다. 그러기에 아폴로13호 의 실패는 국가로서는 빨리 수습해야 할 위기였으며 국민들에게는 미국의 신화 에 대한 충격적인 일격이었다.

무사히 귀환한 아폴로13호는 축하 퍼레이드와 닉슨의 회견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짐 로벨을 비롯한 세사람은 다시는 우주인이 되지 못하였다. 대기권 진입때 발생하는 열기를 견디며 세명의 우주인의 생명을 지킨 사령선 오딧세이 는 프랑스의 박물관으로 보내졌다.그후 미국인들은 아폴로 승무원들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무모한 실험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에 눈을돌리게 된다. 애초부터 그들에겐 원격 조종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들만 주어졌었다.그러나 영화 아폴로13호 는 퇴색해 버린 개척정신과 쓰디 쓴 상처만을 남긴 채 잊혀져 버린 25년전의 역사를 우주선과 휴스턴 관제센터, 온국민이 하나가 되어 대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형상화한다. 이 영화는 달 위를 걷겠다는 야망보다 더 장엄한 미국의 초상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달에 가는 일이 아니라 신과 자연의 시험에 응전하는 인간의 노력이기 때문이다.정재승〈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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