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돈과 선거

"김태일〈영남대교수·정치외교학〉"

세 당의 대선 후보가 정해졌다. 지금부터는 공정한 게임이 문제다. 국회에서도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을 다듬기 위한 정치개혁입법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공정한 게임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돈 문제다. 돈과 권력의 유착 때문에 세상이 그렇게 시끄러웠는데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과 포항 보궐선거는 돈 문제로 개운찮은 뒷맛을 남겼다. 이대로 간다면 오는 12월 대선에서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한다. 돈 선거가 나라를 삼킨다는 것이다.어떻게 해야 하나? 제도의 의미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나 나는 무엇보다 대통령의 의지가 깨끗한선거의 실현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94년 8월 대구 수성갑을 비롯한 4개 지역 보궐선거는 참 좋은 사례다. 그것은 김영삼정부가 정치개혁 조치의 하나로 만든 이른바 통합선거법을처음 적용한, '돈은 묶고 말은 푸는' 첫 시험대였다.

정말 그것은 혁명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통쾌한 기분으로 지켜보았던가. 수성구의 식당 주인들은 건국이래 처음 경험하는 '선거 불경기'에 파리를 날리면서도 즐거워했다. 그동안 선거는 바로 호경기를 의미하는것이었기 때문에 '선거 불경기'라는 말은 '뜨거운 얼음'이라는 말처럼 하나의 형용모순으로 들렸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우리는 무언가 해냈다는 기분으로 '선거 불경기'를 즐겼다. 우리는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했다. 돈 봉투에 의해 얼룩진 선거사의 부끄러운 기록을 지우고 새날을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역사적 현장의 증언자이자 주인공이라고 우쭐하기까지 했다.어떻게 그러한 '혁명'이 가능했을까. 거기에는 통합선거법의 실효성을 분명히 확인하려고 한 국가의 개혁의지가 있었다. 김영삼대통령의 뜻이 힘을 발휘했다. 대통령은 선거운동과정에서 법을 어기는 사람은 공직에서 영원히 추방하겠다고 할 정도로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그것은 뭔가 방법이 없을까라고 눈치를 살피던 선거꾼들의 검은 의도를 단숨에 제압했다. 나는 그때 대구 수성갑 후보자들과 유권자들에게는 물론 김영삼대통령에 대해 많은 경의를 보냈다.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가. 지방자치선거, 국회의원 총선거를 거치면서 개혁의지는 한줌의 재로 변해버렸다. 돈이 선거판에서 다시 춤추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개혁의지의 엄중함이야말로 깨끗한 선거실현에 무엇보다 중요한 열쇠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교훈을 확인하는 대가로 우리는 엄청난 좌절감을 지불해야 했다.

대통령의 선의에만 우리의 앞날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은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 너무 안이하다.깨끗한 선거의 실현을 위해서 시민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 지난 10년간의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는 시민사회의 폭발이라고 부를정도로 많은 시민사회 조직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정치세계의 윤리적 감시자로서 그리고 사회적 공공선의 담지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선거를술과 음식, 돈봉투의 교환시장쯤으로 여기는 유권자들의 반문명적 행태를 바꾸어 놓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조직들이 깨끗한 선거를 위한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돈과 권력의어두운 뒷거래를 차단해야 한다.

돈의 힘에 휘둘리는 정치현실은 어쩌면 시민사회에 뿌리를 두는 새로운 정치세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시민의식의 성장에 의해서만 대체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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