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원상복귀로 끝난 韓銀法 개정작업

정부의 한국은행법 개정작업이 논리의 일관성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지난 6월16일 중앙은행제도 및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재정경제원의 최종안이 발표된 이후 11일 재수정이 결정되기까지 무려 3차례에 걸쳐 개정의 논리가 바뀐 것이다.

결국 재개정의 결과는 현재의 한은법으로의 원상복귀이다. 당초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결정 사항에 대한 대통령의 최종결정권을 없애고 재경원장관이 재의를 요구하더라도 금통위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정부의 요구를 부결할 수 있도록 했으나 재수정을 통해 현재의 한은법과같이 대통령의 최종결정권을 다시 삽입한 것이다.

연초 금융개혁위원회가 발족한 이래 지난달 10일 재경원의 수정안이 나오기까지 한은법 개정을둘러싼 수많은 논의와 협의가 결국은 헛수고로 돌아간 셈이다.

정부의 한은법 개정작업을 헛수고로 만든 핵심요인은 중앙은행의 결정사항과 정부 정책과의 연결고리라는 문제이다.

지난 6월16일 재경원이 최종안이라고 발표한 한은법 개정안은 금융통화운영위원회를 통화신용정책을 결정하는 정책결정기구로, 한국은행은 그 집행기구로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깔린 논리는통화신용정책은 정부의 공권력에 속하는 것으로 이를 행정기관이 아니라 무자본특수법인인 한국은행에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재경원안에 한국은행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폭거라며 강력히 반발하고여론도 정부안에 비판적인 자세로 돌아서자 재경원은 지난달 10일 수정안을 내놓았다. 수정안의내용은 △한국은행을 한국중앙은행으로 이름을 바꿔 금융통화운영위원회를 그 내부기구로 두며△한은을 단순한 집행기구로 전락시킨다는 오해를 초래했던 금통위 사무국은 폐지하고 △금통위의결사항에 대한 대통령의 최종결정권도 없애 금통위의 독자적 의사결정권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정부 공권력인 통화신용정책을 무자본 특수법인인 한은에 주면 정부의 공권력은 대통령을수반으로 한 정부기구가 갖도록 한 헌법 규정에 위배된다는 당초의 '위헌'논리를 스스로 뒤집은것이다. 또 재경원이 그토록 강조한 정부의 경제정책과의 연결고리도 대통령의 최종결정권의 삭제로 사실상 끊어진 셈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수정안은 현행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위헌일 수밖에 없는 문제를 처음부터 안고 있었다. 금융개혁위원회가 대통령에게 건의한 중앙은행제도 개편안에 대해 위헌소지를 들고나왔던 재경원 스스로도 이같은 문제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법제처가 한은과 정부간의연결고리가 미약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최종결정권이 없으면 현재의 헌법과 불합치된다는 요지의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결국 재경원은 위헌소지 제거 및 정부 정책과의 연결고리 확보라는 두가지 문제를 대통령의 최종결정권 삽입을 통해 해결하는 것으로 한은법 개정작업을 봉합했다.

한은법 개정을 둘러싼 이같은 일련의 과정은 "어느 기관이 더 권한을 갖느냐가 아니라 권한에 대한 책임을 누가 더 져야 하는가에 중점을 두고 중앙은행제도의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던 정부의당당했던 당초의 논리는 그야말로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의 부인에도불구하고 한은법 개정작업은 권한다툼이라는 밥그릇싸움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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