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이야기가 아닌 백성 움직인 가치관" 신화와 설화, 전설의 땅 남산. 이 땅 민초들의 입에서 입으로, 문헌으로 갈무리돼 이어져온 남산의 숱한 이야기는 상상의 세계와 현실을 넘나들고 건너지르며 그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새악시처럼 얌전하고 푸르른 망산(望山)과 마주보며 억센 바위를 온몸에 얹어둔채 남성적인 풍모를 그득히 풍겨내는 남산. 복되고 성스러운 서라벌에 내려온 두 신(神)은 태초부터 산이 되기를희구했을는지 모른다. 빨래하던 처녀들이 산 봐라! 고 외친 외마디 비명소리에 우뚝 서 다시는발을 옮기지 못하고 산이 되어버린 신들의 이야기가 그렇다. 이처럼 남산에는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잊혀지지 않는 내력이 고스란히 녹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남산은 삼국시대 설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보고(寶庫)다. 이 설화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앙과 종교의 차원으로까지 승화돼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인 가치의 결정이자 세계관이었다.남산에 남아있는 수많은 불교설화가 그렇고 골 하나, 바위와 초목하나에도 전해오는 설화가 이를말해준다. 남산을 서라벌 최고의 멧부리로 우뚝서 있게 한 것은 유물유적뿐만이 아니다. 범접할수 없는 산천일월의 웅혼한 기상과 이를 아끼고 사랑해온 백성, 그 백성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이야기가 아우러져 빚어낸 총체적 산물이다.
남산 곳곳에 서린 설화를 따라 한발짝씩 더듬어가는 길은 비록 산오름에 힘이 부쳐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왕정골 도당산 서쪽 기슭의 천관사(天官寺)터. 기생 천관과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김유신의 애틋한 이야기가 남아있다. 수양을 게을리한채 기생을 찾아들다 어머니와의 맹세때문에 말의 목을 칼로 내려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오는 곳이다. 그리운님을 단념하기 어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천관. 후일 삼국이 통일된후 김유신은 천관의 집터에절을 세우고 불전에 향을 피워 천관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일진매도하는 화랑의 강한 모습과 자기때문에 목숨을 버린 가련한 여인을 위해 무릎을 꺾은 부드러운 덕이 대조를 보인 이같은 설화는 바로 서라벌의 무서운 저력을 움직이고 결국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지않았을까.
불교가 신라에 전파되기전 이 땅의 사람들은 바위와 같은 자연대상에 신심을 쏟았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남산을 뒤덮고 있는 수많은 바위에도 갖가지 설화가 전해진다. 수리산 정상에서 흘러오는 큰 골짜기인 열반골. 이름그대로 부처님의 세계로 오르는 골짜기다. 이 계곡에는 불상이나 탑등 인공적인 조각품은 하나도 없는 대신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들어차 있어 아예 사람이 손을 대지 못했다는 곳이다.
그 옛날 수많은 남성들로부터 유혹을 받아온 깨끗한 처녀가 모든 번뇌를 말끔히 씻고 열반의 세계에 들어 열반골이라 불린다는 이 골짜기에는 처녀가 속세의 옷을 버리고 가사로 갈아입었다는갱의암과 처녀의 살내음을 맡고 쫓아 내려온 금수들을 상징하는 고양이바위, 개바위, 여우바위,산돼지 바위, 뱀바위, 귀신바위등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자리잡고 있다. 속세의 인연들이 들끓는 이 계곡을 벗어나면 계곡의 물소리도 조용해지고 산도 평평해진다. 순간 정상쪽을 향해 고개를 들면 산허리에 높이 10m가량의 큰 바위덩어리가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똥바위(糞岩)다. 이 똥바위를 본 처녀가 더러운 것과 깨끗함의 차별을 두지 않고 비로소 참된 진리를 깨치면서 마침내보살이 되었다는 설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인간의 속내와 오욕칠정을 고스란히 담아내 남산을 살아있는 산으로 숨결을 불어넣어온 많은 설화는 상당부분 정토설화로 꽃을 피운다. 이 정토설화는 그 구조와 의미등 중요성에서 후세에 많은 연구를 낳았다. 불교에서 현실로 나아가는 환상(還相)과 현실에서 불교로 지향하는 왕상(往相)이 교차돼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던 설화. 이처럼 남산을 미륵불의 세계로, 정토로 구현하려는 서라벌 사람들의 의지는 설화와 전설이라는 수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억겁풍상에도 변함없이 이어져온 남산. 이 땅의 역사는 설화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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