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금융100년-대구종금(2)

86년 접어들면서 국내 및 수출경기는 3저현상의 영향으로 호황을 맞았으나 역사가 짧고 취약한지방을 영업구역으로 삼고있는 지방단자사는 성장 제약과 수익 감소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그런가운데 86년8월 3대 사장으로 양태석 전무가 취임했다.

87년 증권시장 활황을 틈타 단자사의 주가가 액면가의 3~4배를 웃도는 호조건이 전개되면서 대구투자는 기업공개작업에 착수, 88년1월 상장에 성공했다. 이해에는 포항과 구미에 영업사무소를 설치했다.

88년 5월에는 오랜 숙원이던 사옥신축 기공식을 거쳐 89년12월26일 대지 5백3평, 연건평 2천30평규모의 본사 사옥을 완공해 이전했다. 창립10주년째 있었던 경사였다.

90년대 들어서 영업실적이 크게 높아지면서 90년 재무부로부터 우수저축기관상을 수상했으며, 93년8월에는 총수신 1조원을 돌파했다.

93년10월27일 사임한 양태석 사장의 후임에 원호출 초대사장이 재선임됐다. 대구투자는 국내 투금사들의 대대적인 업종전환 바람을 타고 종금사 전환을 추진한다.

대구투자는 상호, 로고, 이미지 및 CI전환 작업을 벌인끝에 96년7월1일 종합금융회사로 새롭게 출발한다. 이로써 기존 단기금융업무 외에 증권, 리스, 국제금융업무를 취급할수 있게 됐다.이해 8월 정기주총에서 원호출사장이 퇴임하고 이재용전무가 5대 사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원사장 취임 후 대구종금은 역외기업인 태일정밀에 의한 경영권 장악 기도 파장에 휩쓸린다. 화성산업을 중심으로 한 대구지역 주주는 '대구종금 지키기 협의회'를 발족해 경영권 수호에 나서는등대구종금 사태는 지역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화성산업을 중심으로 한 지역주주들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함으로써 9개월에 걸친 태일정밀과 화성산업간의 지분 확보 공방전은 적지않은 후유증을 남기고 종결됐다. 97년 5월27일 정기주총에서양측은 경영에 상호협력한다는 합의를 하며 이재용사장을 유임시켰으며 최근 태일정밀은 대구종금 주식을 공개매각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가까스로 M&A파동에서 벗어나면서 대구종금은 안정적인 경영환경을 맞았지만 기업들의 잇단 도산과 최악의 경기침체로 부실여신이 대거 발생하는등 영업적 측면에서 창업 이래 가장 힘든 시기를 맞고 있다. 대구종금은 경영혁신팀을 구성하는등 어려운 금융환경 속에서도 살아남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지역민의 각별한 관심 속에 성장해온 대구종금. 뼈를 깎는 경영혁신으로 난국을 극복해 지역을대표하는 금융회사 중 하나로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金海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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