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15, 16번째의 원전이 들어서는 함남 신포는 두 얼굴을 가진 도시로 변해가고 있었다.텅빈 부두와 녹슨 10여척의 크고 작은 철선, 희뿌옇게 퇴색된 회색 건물들, 까까머리처럼 잡초가무성한 가파른 야산, 그리고 항구 곳곳에 큼지막한 붉은 글씨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충성을 강요하는 구호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표단이 12시간의 긴 항해를 마치고 19일 오전 물안개속에 제일처음 발견한 신포의 모습은 퇴락해가는 사회주의 도시 그대로였다.
반면 차체의 전방과 측면에 'KEDO'라는 이름을 드러낸채 양화항 부두위에 당당히 정렬해있는10여대의 국산 지프형 승용차 및 대형버스의 모습과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환영하는KEDO관계자들의 목소리는 대표단의 눈과 귀를 놀라게 했다. '주체사상의 도시 신포'라는 선입견으로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달말 신포에 도착한 한 관계자는 "우리 기술자들이 우리 차량이나 장비를 몰고 작업을 하거나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가슴뿌듯하다"면서 "북한주민들에게 상당한 상징적 의미와 문화적 충격을 주고 있는 것같다"고 말했다.
나이가 지긋한 북측 세관원은 한나라호의 웅장한 자태에 감탄하면서 "남한에서 경수로 사업에 많은 돈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주민들도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항구에서 부지로 이동하는 동안 제일 눈길을 끈 것은 일반 주택의 담장안 텃밭에서 무성하게 자라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옥수수 등 농작물과 80㎝도 자라지 못한채 앙상하게 줄기만 드러낸 협동농장 농작물의 대조된 모습이었다.
'농장포전도 내 포전이다. 알뜰하게 잘 가꾸자'라는 길가의 표어는 이같은 대조적인 모습의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잘 말해 주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강상리 '게스트하우스'의 모습은 '이곳이 과연 북한땅인가'라는 의문을 갖게했다.
"경수로에 관계된 것 이외에는 찍지 말라"고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던 북측 안내원의 태도가 갑자기 유순해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후 취재진들은 부지내에서 아무런 제재없이 자유롭게 취재할수 있었다.
또 게스트하우스 앞에 'HYUNDAI', 'DAEWOO'라는 상표를 달고 도열해있는 덤프트럭과 굴착기·불도저 등 중장비의 위용은 북한주민들에게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시위하고 있는 듯 했다.부지내에는 남과 북이 따로 없었다.
시공회사의 한 관계자는 "일할 때는 함께 땀흘리고 일과후에는 간단히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면서 "남북 기술자들이 함께 술자리를 하는 것은 이제 더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게스트 하우스'의 북한 외화벌이 상점에서는 북한 노동자들과 맥주를 함께 마시며 얘기꽃을 피우고 있는 우리 기술자 몇팀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적어도 실무자들간에는 경수로사업이 남북간 교류 및 협력의 새장을 열게 될 것이라는 기대어린전망들을 현실화시킨 모습이었다.
또 그동안 평양에서만 볼 수 있었던 것들도 눈에 띄었다. 나진·선봉에 이어 신포에서 조심스럽게 자본주의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숙소가 들어설 부지옆에 설치된 평양 옥류관 신포분점과 외화벌이상점의 점원들, 안내원들은 북한당국이 경수로사업을 계기로 외화벌이를 위해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 고위인사들은 경수로 사업이 미북간 협상의 부산물임을 집중 강조하며 실질적인 남북간 협력사업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김병기 북한 경수로대상사업국장은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든, 돈을 많이 내든, 그런 문제는 KEDO내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북한측이 경수로 사업을 어떻게 해석하든 신포는 남북이 함께 공동의 목표를 위해 땀을 흘리는한반도 유일의 장소로서, 남북간 교류와 협력의 '열린 마당'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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