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의 오타 마사히데(大田昌秀)지사와의 면담을 위해 현청을 방문했을 때 공보담당 직원은 지사실로 안내하기 전에 먼저 '오키나와로 부터의 메시지-오키나와의 내일을 생각한다'라는홍보비디오를 보여 주었다.
오키나와 전쟁의 참극과 미군기지 건설과정 등으로 시작된 비디오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미군은 오키나와 전쟁중 본토공략을 위해 차례로 미군 기지를 건설했다. 전쟁이 끝난후에도 강권적으로 토지를 접수하며 기지를 확대, 평화의 섬은 군기지의 섬으로 변모했다. 전후 52년이 지난오늘날 일본 전국토 면적의 겨우 0.6%%에 지나지 않는 협소한 오키나와에 전국 미군전용시설 면적의 약 75%%가 집중되고 있다. 이들 기지는 오키나와 본섬 전체 면적의 20%%를 점하고 인구와 산업이 집중돼 있는 중부지역에 모여있다. 그것도 주민 거주지역에 인접해 있음은 물론이고잦은 군사훈련으로 많은 제한구역이 설정되어 지역개발에 큰 저해요인이 되고있다. 주일미군의총 병력은 약 4만6천명인데 그중 약 60%%에 해당하는 2만7천명이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다. 미군기지에서 발생하는 각종사건·사고도 계속돼 그중에서도 미군에 의한 형사범은 미군정으로 부터 복귀된 72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4만8천23건에 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민간인 살인사건 12건도 포함돼 있다. 또한 항공기사고 1백27건, 산림화재 1백37건 등으로 주민들의 분노와 불안은 확대돼 왔다. 비디오는 미군들로 인한 주민피해 사례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지난 95년9월 오키나와 북부지방에서 귀가하던 초등여학생을 미군 병사 3명이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오키나와현 경찰이 미군측에 범인들의 신병인도를 요구했으나 거부 당했다. 미일안보조약에 기초한 미일지위협정에 '공소가 제기되기까지는 합중국이 계속해서 구속한다'라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키나와 전도(全島)가 들끓어 올랐다. 이러한 가운데 오키나와현의회에서 오타지사는 미군기지용지의 수용에 필요한 서명을 거부한다고 표명했다. 미일안보체제를 뿌리째 흔드는 사태로 까지 발전했었다.
오키나와의 미군기지용지는 1972년5월 미군정으로부터 반환이 된 이후부터는 국가가 지주와 임대계약을 맺고 미군에 제공하고 있다. 계약에 응하지 않는 지주에 대해서는 82년부터 주둔군용지특별조치법에 따라 지사가 국가로부터의 기관위임사무로서 대리서명 등의 강제사용수속에 응해 왔었다. 그러나 4번째 대리서명을 앞두고 처음으로 오키나와지사는 국가의 협력에 대해 명확하게노(NO)라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시일이 임박한 당시 무라야마(村山)총리는 오타지사를상대로 직무집행명령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 총리와 지사가 원고와 피고로 갈려져 법정투쟁을 벌이는 이례적인 사태로 까지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10월21일 열린 현민 총궐기대회에서는 주민 8만5천여명이 모여 격렬한 반미시위를벌였다.
96년4월 하시모토 총리는 미일수뇌회담 5일을 앞두고 먼데일 주일미대사와 오키나와가 강하게 요구해왔던 후텐마(普天間)비행장의 전면반환을 전격적으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도시 중앙부에위치한 후텐마비행장은 주택지가 비행장을 둘러싼 것처럼 밀집돼 소음피해와 사고발생의 불안으로 오타지사는 최우선적으로 반환을 요구해 왔었다.
한편 대리서명 재판은 최고재판소(대법원)까지 올라가 오타 지사의 상고는 기각되고 국가의 승리가 확정됐다.
같은 시기에 도도부현(都道府縣)급의 주민투표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행해진 오키나와 현민투표는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정리·축소와 미일지위협정개정에 대한 주민들의 가부를 물었다. 결과는 투표율 59.5%%에 찬성89.1%%로 전체유권자의 과반수가 현의 방침을 지지하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
그후 하시모토총리와 오타지사는 회담을 갖고 정부는 오키나와의 진흥을 위해 특별조정비 50억엔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우정성이 마련한 멀티미디어 계획 등 각종 지원책으로 앞으로 몇천억엔이 오키나와에 투입될 것임을 시사했다. 경제진흥책이라는 이름의 당근이 주어진 것이다.그러나 전후 50년을 맞은 해에 발생한 여학생 폭행사건에 의해 '오키나와의 반란'으로까지 불려진 그 항의 운동이 지금은 잠시 조용해진 듯하나 오랜 세월동안 잠재돼 있는 미군철수 투쟁은 언제 폭발할지 모를 불씨로 남아 있다.
〈도쿄·朴淳國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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