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만물 조화된 대동세상 추구"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깨어진 보도블록 조각위 망가진 채 내팽개쳐진 휠체어. 그 위로 무심히 내리꽂히는 한낮의 따가운 햇살.
피와 함성으로 우리 현대사의 한 단면을 채웠던 '5.18 민중항쟁'은 17년이 지난 여름날 오후, 시위장면을 연상케하는 설치작품 '유행가-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그렇게 광주땅에 되살아나 있었다.광주시 북구 운정동 5.18 묘역 일대.
5만1천여평에 달하는 이 곳에서는 내달 1일부터 열릴 '97 광주비엔날레'의 특별기념전으로 지난15일 개막된 제2회 광주 통일미술제가 한창이다. 28일 현재 관람객 수는 5만여명(주최측 추산).오는 10월15일까지 두달간 개최될 이번 행사는 5.18묘역의 성역화 작업과 5.18민주화운동의 국가기념일 지정을 기념하기 위한 것.
통일미술제 추진위원회(위원장 김윤수.영남대 교수)가 주최하고 광주.전남 미술인공동체(약칭 광미공)가 주관하는 대규모 민중미술전으로 묘역 입구 굴다리(내촌육교)에서 묘역에 이르는 4㎞구간에 마련된 1백%% 야외 전시다.
광주.전남을 비롯, 대구와 수도권, 부산, 울산, 충.남북, 전북, 제주및 해외작가 1백80여명과 19개미술단체가 참여, 2백여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의 화두는 '화엄 광주'.광주가 주는 '저항'과 '해방'의 이미지, 광주 고유의 지역문화 특성을 국내외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광주의 정신성과 삶의 구체성을 자연스레 연결, 미술의 인식활동을 단순한관람에서 참여의 단계로까지 이끌어보자는 취지다.
행사 실무를 맡고 있는 광미공 회원 정희승씨(33.서양화가)는 "전시회 테마 '화엄 광주'는 덕을닦아 우주 만물이 어울려 조화롭게 된다는 대동정신으로 시민과 학생, 작가가 함께 하는 열린 전시를 구현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옹벽, 분수, 굴다리, 저수지등 옥외전시장이란 공간 특성에 맞게 설치된 평면, 입체작품들중 눈길을 끄는 것은 1천2백여명의 광주.전남지역 중.고교생이 기성 작가 못지않은 열정으로 지도교사들과 함께 제작한 1천2백여점의 작은 그림들을 하나로 연결한 '만인의 얼굴'.
묘역 입구 진입로에 걸려있는 이 작품엔 가족과 친구, 평범한 촌로에서부터 정치군인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속의 다양한 인물들이 그려져 있어 삶의 동질성과 무상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묘역 인근 저수지에는 색색의 바람개비가 환경친화적 작품으로 설치됐으며 전시장 곳곳엔 '통일문화여장군'등 장승과 솟대가 관람객을 반긴다.
주전시장인 추모탑 앞 '민주광장'에는 광주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전 '광주로 가는 길'이 영상매체연구소 주최로 열리고 있으며 새빨간 물감을 푼 설치작품 '웅덩이'는80년 오월 광주의 섬뜩함을 떠올리게 한다.
미술을 '체험'의 영역으로 확대, 대중적 행위로 풀어내면서 분단 현실의 극복과 통일에의 의지를드러내는 젊은 작가들의 창작판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벤트 행사로는 영령들의 명복을 비는 의미로 오는 9월6일부터 49일동안 매일 오후 6시30분 전국 민중가수들이 1명씩 출연하는 '49재 릴레이 노래공연'과 행사를 위해 별도 구입한 시민군 지프로 관람객을 묘역까지 태워주고 기념촬영도 할 수 있도록 하는 '오월 시민군 체험' 코너가 마련된다.
행사기간중 관람객들이 남긴 방명록은 전시회 폐막후 유리상자에 담겨져 구 망월동묘역에 영구전시보관될 예정.
무사안일한 주류 미술계에 대한 비판적 의미를 담은 통일미술제는 당초 지난 95년 세계 스타급작가들의 참여로 엘리트주의적인 비엔날레의 성격이 미술의 본래 기능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비엔날레와의 차별성을 지니기 위한 대안(代案)으로 시작됐다.
충분한 여론 수렴과정을 거치지 않고 급조된 광주비엔날레가 민주화 성지 광주의 정신성을 담기엔 역부족이란 지적과 당시 검찰의 5.18 불기소 조치에 대한 항의가 거세게 인 급박한 사회적 배경에서 탄생한 통일미술제는 그러나 이제 형식과 이념으로 뭉쳐진 '비엔날레속 비엔날레'로 새로운 터를 닦게 됐다.
1백여장의 열사도(烈士圖) 만장에 둘러싸인 2백17기의 묘지위로 설치된 민중미술가 임옥상, 최병수씨의 공동작품 '말풍선'. 풍선모양의 팻말 표지 2백17개에 씌어진 글귀들이 발길을 돌리는 관객의 뒷모습속에 역사속으로 묻혀간 산 자와 죽은 자의 교감을 새삼 각인시킨다.'살아있는 사람들아, 나는 죽은 사람인데 살아있고 왜! 당신은 죽어있는가?'
단절되지 않은 면면한 역사의 흐름. 8월 늦여름의 광주는 그래서 '그해 오월'의 광주만큼이나 푸르다.
〈金辰洙기자〉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