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자존심과 빈곤의 갈등을 겪고 있다.
주체사상으로 무장되었던 주민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식량문제로 현실이 노출됐으나 손을 벌리자니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자존심을 지키면서 어떻게 원조를 순조롭게 받느냐의 심각한 고민에 싸여 있다. 어디 식량뿐이랴, 경제전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평양인구는 약 2백20만명이었는데 1~2년새 10여만명이 평양을 떠났다고 한다. 안내원은 "자진해서 타지역으로 애국 봉사하러 나갔지요"하며 국가를 위한 봉사라고 강조하나 잘 이해되지 않는부분이다.
평양에는 자가용이 많이 늘어났다. 주로 자가용 소유자는 일본동포나 화교인데 자동차수가 2천대를 넘어섰다고 한다. 특히 1천5백여명의 평양거주 화교들은 '화교연합회'를 조직해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데 일부 북한주민들은 돈잘버는 화교들을 가리켜 '장사질만 하는 떼놈'이라고 불렀다.북한 전역에는 교통신호등이 가동되지 않는다. 수년전 모처럼 평양시내등에 가설했던 교통신호등의 작동을 최근 일체 중단시켰다. 신호등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의 공연한 연료소비를 아끼자는 뜻에서라고 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 여자들인 교통안전원(일명 네거리의 무용수라고 애칭됨)들이 예전처럼 손수 한손에 봉을 든채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이들은 무술 사격 운전 정비자격까지 겸비해야 안전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최근 2년전부터평양에 육교가 새로운 명물로 등장해 주민들이 횡단보도대신 이용하고 있는데 그들이 '허공다리'라 부르는 이육교가 하나 둘씩 증가되는 추세였다.
한편 기자는 96년초까지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근무할 당시 알고지냈던 노동신문 특파원과 외교부의 부영사 한명을 만나고 싶어 수소문했으나 북한 당국은 그들의 거취조차 노코멘트로 일관했다."이것보세요. 3년간이나 같이 지내던 사람들을 평양에 이제 겨우 들어와 반갑게 만나고 싶은데왜 못만나게 하는거요".
책임지도 안내원및 참사(관)는 끝내 묵묵부답으로 그들의 소식전하기를 거부했다. 웬만하면 만나게까지는 못하더라도 소식정도는 알려주련만 지금까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혹 잘못되어 감옥이라도 간 것이 아닌지.
그러나 금강산에 다시가고 싶다는 기자요청에 처음엔 반대하다가 마침내 수락해 주었다. "한번보지 않았습니까. 왜 또 가려고 합니까" "8년전에 보았는데 금강산은 기회가 되면 언제라도 다시보고 싶은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는 2박3일 코스의 금강산여행을 마지못해 승인하며 "연료값이랑은 전부 내셔야 합니다" "걱정마세요. 지금 어려운 형편인데 공짜 구경하겠다는게 아니니까요".
기자가 금강산 구경을 고집한 것은 물론 수려한 금강산 경치탓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평양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북한방문 일정전부가 평양에서만의 체류로 짜여져 있어 더욱 그랬다.잠깐 기자의 이번 방북경위를 간략히 전한다.
이는 지난 94년 독일의 북한창구를 통해 매일신문 김채한부장과 사진기자 그리고 특파원이던 나까지 3명이 북한고적(절)취재를 목적으로 방북신청을 한 적이 있다.
당시 10월께 북한에서 단군릉을 발견했다 해서 다른 한국인사들도 초청하는 등 분위기가 나쁘지않을 때였다. 그런데 국적관계로 기자만 북한에서 비자가 나왔으나 결국 우여곡절끝에 방북문제가 깨져버린 적이 있다.
아무튼 기자의 이번 방북은 당시 무산됐던 북한 고적자료수집이 목적이었으나 북한측이 평양에만있도록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북한의 대표적인 관광지 금강산으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먼저 원산으로 가는 길에 마식령산맥을 뚫는 4천1백m가 넘는 무지개 동굴의 보수작업으로 굴 통과시간이 제한돼 있어 극히 불편했다. 낮에는 작업을 하고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밤에만 차량을 통과시켰다. 통행이풀린 밤시간에 긴 동굴을 지나 도착한 원산시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가로등 하나 없이 아파트에 드리운 뿌연 불빛아래 형체를 드러낸 우뚝선 건물들. 이 어둠의 도시에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흡사 피란민 대열이기도 했다.이 어둠과 침묵속의 도시가 을씨년스럽게 다가왔다. 예전에는 1~2개소에 불과했던 검문소가 6개소 로 늘어나 있다. "아니 웬 검문소가 이렇게 많이 생겼소"라고 묻자 안내원은 "전련(일선)에 가깝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지역간에는 운행되는 버스등 대중교통수단이 전문했다. 어쩌다지나가는 트럭이라도 잡아타면 그날은 운수가 좋은 날이다. 기자를 안내한 금강산의 여성 안내원(강사)도 근무후 1시간20분이나 걸어 집에 오간다고 했다.
보통 시골에선 1~2시간 걷는 일은 주민들에겐 다반사다. 노선버스가 없으니 불빛하나없는 밤길을무작정 걷는 수밖에 무슨 다른 방도가 있겠는가. 기자가 묵은 금강산호텔의 전력사정은 아주 나빴다. 수시로 전기가 나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데도 조심스러웠다. 정전으로 갇힐 우려가 있기때문.
이 호텔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엘라씨(독일여성으로 UN근무)는 어떻게 왔느냐는 질문에 "북한 고아원의 식량사정을 파악하러 왔다"고 했다. 식당의 여성 접대원들은 기자와 엘라씨와의 대화를무척 못마땅해 했다. 그런 눈치를 모르는 척 계속 영어로 얘기를 계속하자 한 접대원이 와 우리의 대화를 끊었다. "이 여자 언제부터 아는 사이입니까" "여기서 만났소" "선생자리는 따로 있는데 왜 여기와서 오랫동안 있습니까" "아니, 서로 혼자이니 얘기를 나눌 수 있는것 아니요, 무엇이잘못됐소"
기자는 엘라씨에게 이 접대원여성이 우리의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려주고 내 자리로 왔다.안내원이 이러한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금강산 입구에는 우리나라기업가가 세웠다는 금강산 샘물공장이 눈에 띄었다. 곧 가동을 시작한다며 안내원이 물었다. "혹시 남조선의 카스맥주 아세요?" "네, 캐나다에까지 수출되고 있지요" "그 맥주, 우리 샘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요, 어떻게…?" 그는 더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농담으로 한마디 던진 듯도 싶고, 그도 어디서 한마디 전해들은 것을 그냥 해본 소리에 불과한 듯싶다.
금강산의 밤하늘은 총총한 별들로 덮여 있었다. 그 맑고 아름다운 별빛, 도시의 불빛이나 오염으로 멀어진 별빛이 이곳에선 그대로 살아있어 새삼 가슴을 설레게 했다.
라듐성분이 많은 금강산 온천도 인상적이다. 온천욕은 한번 했는데 며칠간이나 피부감촉이 매끄러운 기분이 지속됐다. 단지 산 중턱 보기좋은 자리마다 바위에다 새겨놓은 자연훼손행위가 계속돼 기분이 상했다. 예전 붉게 새긴 글씨와 함께 김일성사후에도 여러곳(바위)에 김일성부자 찬양등의 글 새김으로 금강산 풍치를 망쳐놓고 있었다.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시중호의 해돋이를 보기위해 금강산에서 새벽 4시반에 출발했다. 날씨가 흐려 제대로 된 일출을 볼 수 없었으나 통천군을 지나 원산에 닿았을때 강원도위원회 책임지도원으로부터 정주영씨의 애인 주기철의 얘기가 나왔다. 이미 통천군뿐 아니라 북한 여러곳에선정주영씨 애인(북한에선 처라고 호칭함)과 딸 조명옥(58)씨 얘기를 화제로 삼았다. 정씨가 금강산개발건으로 89년 1월 북한을 방문하고 고향을 찾았을때 애인 주기철을 다시 만났으나 그후 91년주기철이 심장병으로 죽었다는 사실과 정씨가 남쪽으로 가버려 애인은 정씨 딸을 결혼한 남편 성을 따서 조씨로 했다고 강원도 안내원이 일러줬다. 평양에서 만난 천도교 청우당 당수안 유미영씨도 오익제씨 얘기가 나오자 오선생도 이북에 처가 있고 정주영씨도 처가 있다고 할 정도로 북한에서는 많은 사람이 정회장의 가족관계를 알고 있는듯 했다.
북한에서 나를 도와준 문선생(운전기사)은 지난번 북한에 억류됐던 우성호선원 6명을 6개월간 자신이 담당했었다며 그들과 사귀었던 정을 얘기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판문점을 통해 헤어질때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어요. 남조선에서 어로공들은 잘 살지 못하고 여자들은 어로공들과 결혼하기 싫어한다면서요"
최근 북한도 금강산 묘향산외에 황해도 사리원에 있는 정방산을 개발, 새로운 관광코스로 추가시켰다. 주민들이 당국의 혜택으로 단체로 놀러오거나 외국인들도 들러가는 곳이됐다. 비록 경제난으로 총체적위기를 맞고 있으나 외국인 관광객들을 꾸준히 입국시키고 있었다. 요즘은 중국·대만 관광객이 많아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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