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칼럼 세풍-명절을 바로 알자

전쟁을 치르듯 추석(秋夕)을 보냈다. 수천만명의 인파가 귀성과 귀가길에 오르면서 일반.고속도로가 몸살을 앓았고 어려운 경제여건으로 가정과 기업들도 '돈가뭄'에 곤욕을 치렀으며 충격적인유괴살인사건으로 몸서리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유의 명절이 이름만 있을뿐 산업화와국제화에 밀려 얼을 잃어가는 아쉬움이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한다.

모든 곡식이 익어가는 일년중 가장 큰 만월(滿月)날인 추석. 여름처럼 덥지도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 생활하기에 가장 알맞고 오곡도 풍성한 계절이기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이라는 명절이 도시민들의 여가개념으로 변색되고 있다.

명절을 맞아 시골의 노인네들이 도시의 자식들을 찾아가는 기현상은 산업화로 인한 어쩔수없는것이라고 하더라도 추석의 의미조차 모르는 현대인들이 많은 것은 우리의 전통을 잃어가는 슬픔이다. 삼국시대초기서 생겨나 수천년을 이어온 추석은 농경민족인 우리조상들에게는 더 없는 명절이다. 봄에 씨뿌려 가꾼 곡식이 열매를 맺어 수확의 계절을 맞아 햅쌀로 밥을 짓고 술을 빚으며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조상에게 천신(薦新)하고 이웃과 나눠 먹음으로써 풍요로운 자연과조상에 감사드리고 이웃간에 상부상조의 정신을 심어주기에 지금까지 지켜온 명절이다.그런데도 햇곡식으로 정성들여 빚어야 할 송편은 사라지고 그 기능은 시장바닥의 떡집에 맡겨졌거나 아예 없어졌다. 햇곡식과 국산 제수도 사라져 차례상이 외래품 전시장이 되고 있다. 정성이깃들여야 할 차례도 귀가길과 바쁜 일정으로 건성이다.

차례와 기제사는 집집마다 절차와 상차림이 다르지만 밤.대추.감(곶감)은 모두들 필수적으로 올린다. 수백년이 지난 밤나무의 뿌리에 싹을 나게했던 밤껍질이 썩지 않고 남아있듯 조상의 뿌리를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밤이 올려진다. 대추나무는 핀 꽃은 어김없이 열매가 맺어 자손이 융성하라는 뜻으로 대추를 올리며, 감나무는 접을 붙이지 않으면 고욤밖에 열리지 않기에 노력과 교육의 상징으로 감을 올린다는 옛조상들의 얘기를 현대인 몇사람이 그 뜻을 알고 차례를 지냈는지궁금할 뿐이다.

수세기동안 전승되던 각종 추석놀이도 잊혀진지 오래이며 차례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화투판이 이를 대신하고, 대선을 앞두고 정치까지 추석에 끼어들어 표낚기에 열을 올리는 현상까지 벌어진다.음식나눠먹기 또한 나눠줄 사람이 없어 이웃도 없이 가정마다 추석음식을 처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지나친 풍요가 상부상조의 미풍을 앗아간 것이다.

추석전 조상의 산소벌초도 낫으로 정성들여 하던 옛풍습은 사라지고 요란한 기계소리의 제초기가등장, 조상을 놀라게 한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기계화는 어쩔 수 없는 추세지만 벌초대행업체까지 등장하고 보면 정성이 아닌 돈만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세상이 되었다.산업화와 함께 모두들 생계꾸리기에 바쁜 현대인의 생활속에 어쩔 수 없이 명절풍속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잘만 살면 그만'이고 '현대화가 최고'라며 모두가 격식과 전통을 내던진채 황급히 달려오면서 얻은 것도 있었지만 잃은 것이 너무나 많다.

전래의 미풍양속이 사라지면서 전통윤리가 무너지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자기중심적 사고가팽배해 이웃은 살든 죽든 관계치 않는 풍조속에 공동체의식도 실종됐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도로나 산천이 쓰레기더미로 변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명절때만이라도 명절의 뜻과 의미를 되새기고 추석차례상만이라도 조촐할망정 경건하게 격식에 맞춰 차려 달과 조상앞에 전통과 격식을 지킬 것을 고하는 것도 바람직한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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