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신문 여성생활기 공모 최우수작

괴물의 손 같은 포클레인이 한 무더기씩 흙을 퍼내고 있었습니다. 구덩이가 깊게 패여지고 긴 직사각형 B의 관이 그 속으로 조심스럽게 내려졌습니다. 관은 서서히 땅속으로 침잠하였고 그 위에한켜 두켜씩 흙은 내려 덮여졌습니다.

"잘가 B, 그 길고 큰 고통 견디느라 정말 수고 많았다. 이제 네가 가는 그곳은 고통도 없고 오직행복과 평화만이 넘치는 곳일 거야. 잘가…"

이제 관은 보이지 않았고 상두꾼들의 빠른 손놀림만이 계속되었습니다. 나지막히 가라앉은 잿빛하늘도 마지막 가는 B의 모습이 안타까운지 금방이라도 물을 후두둑 떨굴 것만 같은 얼굴로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덟살된 훈이를 달래 손을잡고, 조금 더 높은 산 기슭으로 올라갔습니다. 진달래, 진달래가꽃망울을 열고 있었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것도 아니고 이제 막, 일제히 봉오리를 터트리고 있었습니다. 누구의 넋인가? 슬픈 진달래, 맑은 분홍빛이 슬프도록 고왔습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 생활에 무언가 편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가정보다는 직장을 우선으로 집착하는 듯한 남편이 못마땅했고, 자라면서 점점 내 틀에서 튀어오르는 아이들도 전혀 마음에 차지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 나는 과연 무엇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를 수없이 내 자신에게 되물으며 내 존재에 대한 회의와 알 수 없는 불안에 날로 마음은 우울해져 갔습니다.어느날 우연히 신문 한 구석에 나와 있는 조그만 활자가 눈을 끌었습니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나는 조심스레 수화기를 집어들었습니다. 오래전부터 막연하게나마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습니다.

호스피스 교육. 가톨릭 꾸르실료 교육관.

확실히 호스피스 교육은 나에게 전달되어 오는 느낌이 이전의 그 많은 교육들보다 그 강도나 빛깔부터가 달랐습니다. 우선 그 빛깔은 죽음이라는 배경을 깔고있기에 검고 어두운 빛이었습니다.강도 역시 다른 어던 교육보다 직접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 숙연하고 진지했습니다. 강사진은 심리학 교수들과 의사, 호스피스 실무 지도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강의 내용은 죽음의 철학, 죽음의 심리, 영적간호, 신체간호 등등. 호스피스가 꼭 알아야 할 이론 교육이었으며, 중간중간 호스피스 선배기수들의 사례발표와 체험담들은 가슴 뭉클한 감동과 함께 수강생 전체를 눈물바다에 빠지게도 만들었습니다. 며칠동안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입시생처럼 박혀 앉아, 사랑과 겸손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수도없이 반복하여 듣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때라는생각이 들자 왠지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정말 못나고 보잘 것 없는 내 자신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그러기에 더 교만하고 잘난 체, 있는 체 했던 내 자신이 견딜수 없이 부끄러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에 불만스러웠던 가족들과의 관계와 내 자신에의 회의를 다시금 재조명하는기회가 되었습니다.

호스피스는 중세기 가톨릭 수녀들의 자선기관이었다고 합니다. 나그네들과 순례자들에게 임시로쉬어갈 잠자리를 제공하고, 병든 사람을 치료해 주고, 사후 처리까지 해준 것이 오늘날 호스피스의 발달로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 호스피스가 그 정신을 이어받아 의학적인 도움의한계에 이른 환자에게 남은 여생을 보다 평온하고 뜻있게 살도록 정서적이며 영적인 차원에서 죽음을 보다 평안히 받아들이도록 돕는 봉사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호스피스(hospice)와 호스티스(hostess)는 같은 개념의 말이라고 합니다. 다만 호스티스는 내가 아름답게꾸미고 상대방을 맞이하는 것이고, 호스피스는 상대방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차이입니다. 호스피스들은 6개월 이상의 정기교육과 병원 접촉을 거쳐 환자를 맡게 됩니다. 호스피스들이 맡게 될환자들은 대부분 6개월 안에 사망할 확률이 높은 말기 암환자들로서 의사들의 판단 기준에 의해맡게 되지만 자기의 주변 사람이나 친척, 집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그런데 내가 막상 환자를 맡고 일을 시작하자 뜻밖에 남편으로부터 심한 반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왜 하필 당신이 그일을 해야만 해, 병원에도 가지마! 전에 신문에 났던 기사도 잊어버렸어? 모병원 간호사들도 결핵에 감염됐다는 거, 병원 공기는 또 어떻고, 더구나 말기 암 환자들을 돌본다는거…"

남편은 그냥 교육만으로 끝내라는 겁니다. 나는 나름대로의 이론을 펼치며 남편을 설득해 보았지만, 그는 이미 내 머리위에서 그러니까 나보다 한 단계 더 올라서서 나의 말을 묵살해 버리곤 하였습니다.

"당신 샤워는 한거야? 환자 만졌던 그대로 온건 설마 아니겠지?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는데 이쯤해서 그만 둬!"

암 선고를 받은 환자들은 대개 다섯 단계의 심리변화를 거치게 된다고 합니다.첫째는, 완강하게 부인을 합니다. 의사의 오진일 거라고, 그러면서 이곳 저곳으로 병원쇼핑을 시작하게 됩니다.

둘째는, 분노의 단계입니다 자신은 남에게 특별히 못할 짓 한 것도 없고 선(善)하게 살아왔는데왜 자기에게 이런 병이 왔느냐고 분노합니다.

세번째, 불면증과 공포가 따르며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네번째, 신(神)과의 협상을 시작합니다. 3년만 더, 혹은 1년만 더 살게 해 달라고 그때까지 못했던일 마무리 짓겠다고….

다섯번째는 마지막으로 수용의 단계입니다. 이젠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때에는 대개 경제적으로도 많이 어려워지고 환자 가족들도 지쳐있게 마련입니다. 이즈음 환자는 더욱 소외감을 느끼며 말할 수 없는 육체적 통증과 정신적 고독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호스피스의 활동은 시작됩니다. 환자에게는 안심하고 편하게 죽을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 있어주고, 그가족들에게도 위안을 주며 도움도 줍니다.

B, 이제 B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B의 이야기를….

B는 나와 한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10여년 전부터 나는 그녀와 오가는 길에 마주치면서로 눈 인사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녀의 집앞에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었는데, 여름에는 늘 그아래 평상에서 잘 마주쳤습니다. 그녀는 나와 마주치면 메밀꽃같은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 했고, 나는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그 미소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96년도 8월부터그녀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열흘 스무날…. 말은 별로 없었지만 항상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안보이니 나는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나는 B의 이웃 사람을 붙들고 그궁금증을 풀어 낼 수 있었습니다.

"7년 전에 수술했던 유방암이 재발하여 지금 대학병원에 있어요. 이제 겨우 나이 서른셋밖에 안됐는데…"

이웃 사람들도 모두 같이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귤을 한봉지 사들고 그녀의 병실을 찾아 갔을 때 그녀는 나를 보고 적이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평소 가깝게 지내지 않은 탓인지 그녀는 전혀 뜻밖이었던 모양입니다. 보호자도 없이 일반 병실에서 간호사들과 다른 환자 보호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그녀는 외롭게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B의 남편은 노무직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보름, 이십일 씩도집에 들리지 못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B는 누구의 도움없이는 몸을 잘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B는 근심어린 얼굴로 내게 말을 했습니다.

"내일부터 항암치료에 들어 간대요. 너무 힘들어 정말 하기 싫은데…"

나는 더운물을 받아다 며칠동안 씻지않아 끈적끈적한 그녀를 얼굴과, 목, 손발을 닦아주고 머리도감겼습니다. 치료를 받으면 곧 다 빠져버릴, 굵직한 웨이브가 아름다운 그녀의 머리결을 빗질해줄 때 가슴이 싸아하게 저려왔습니다.

그런데 네번째 방문 때였습니다. 그때는 B가 집에 와 있었습니다. 나는 호박죽을 끓여 작은 냄비에 담아, 식기전에 B에게 먹여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심코 B의 방문을 열었습니다. B는 칠순이 넘은 시어머니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경멸하는 듯한 싸늘한 그 눈빛이 오소소 소름이 돋을 것만 같았습니다.

"왜 자꾸 오는 거예요? 죽어가는 사람 보니 재미있어요?"

으로 들어가 수저와 물그릇을 챙겨 호박죽을 먹도록 상을 보아 그녀에게로 다가갔습니다."호박죽을 끓였는데 맛있을 것 같아 좀 가져 왔어. 자아 좀 먹고 빨리 기운을 차려야지"나는 그녀의 앞에 상을 내려놓고 숟가락을 그녀의 손에 쥐어 주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는 숟가락을 내동댕이치며 발로 상을 밀어 넘어뜨렸습니다.

"남들에게 좋은 일 한다고 인사 많이 듣겠네요. 흥"

"야아가 왜 이러나 이렇게 고마운 사람을. 너 정신 못 차리겠냐?"

그녀의 시어머니가 달려들어 말렸지만 그녀는 막무가내로 악을 쓰며 울부짖었습니다."너는 왜 성한 거야? 난 아파 죽겠는데, 난 아무것도 못하는데 넌 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거야,왜? 왜?"

나는 엎질러진 호박죽을 쓸어 담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미안하다 B. 네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정말 내가 싫으면 이젠 오지 않을게. 그러나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정말 아니야"

그러면서 나는 우리집 전화번호를 커다랗게 적어 B의 문갑위에 얹으며 말했습니다."네 마음이 풀리고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화해. 기다릴 게"

B가 아직도 분노의 단계에서 가끔 왔다갔다 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돌아왔습니다.

B의 전화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 이튿날 아침 B는 울먹이며 기어들어가는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언니라고 처음부터 부르고 싶었어, 되죠? 지금 당장 와 주실래요? 나 언니 정말 보고 싶은데…"나는 득달같이 달려 B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녀는 아직도 울고 있었습니다.

"언니, 어제는 정말 미안했어. 아마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봐. 가끔 속이 뒤집혀 폭발하고 싶을 때가 많았었지만 솔직히 대놓고 그럴만한 사람이 없데…"

나는 가만히 B의 손을 두손으로 감싸 쥐었습니다.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가끔 오는 고달픈 애 아빠에게 그러겠어, 어린 아이들에게 그러겠어, 그냥 나 혼자 미친듯이 더러 그랬어…"

나는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녀가 하는 말에 귀를 귀울였습니다.

"죽기 싫어. 정말 살고싶어 언니. 훈이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그녀의 심리 상태는 이제 분노의 단계에서 협상의 단계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B는 1주일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2주일은 퇴원해서 집에 있고 하는 것을 반복하기 시작했습니다.탁솔이라는 항암제로 마지막 단계의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이 치료가 끝나면 병이 곧 나을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병세는 더 악화되는것 같지는 않았고 음식도비교적 잘 먹는 편이었습니다. 나는 주치의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그녀의 병세를 알고싶어했습니다. 주치의는 X레이 사진을 걸어놓고 내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재발된 암세포는 물방울 모양으로 이미 간 전체로 전이되어 넓게 퍼져 있었습니다.

B는 참으로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항암 치료도 그전에 받아본 경험으로 다시 시작할 땐두려워 했지만 막상 치료에 들어가자 잘 견디며 받았고, 무엇보다 꼭 나아서 살아야겠다는 집념이 무서울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 약해지는 마음에 엉뚱한 샤머니즘에 빠져들어,무당을 불러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몇백만원씩의 돈을 빌려 여러번 굿판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는 대다수 사람들이 손을 잡는 것 조차 꺼려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도 환자와의 피부 접촉이 스스럼없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들이 필요했으니까요. B의 집안 친척들도 더러 병문안을 오기는 했지만, 다정히 손을 잡아 준다거나 얼굴 한번 닦아주는 사람은 볼 수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따뜻한 대우는 환자가 가장 바라는 것이지만, 건강한 사람들과 선이 그어지고거리감이 느껴질때 환자는 더 큰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정말 가슴아팠던 것은 B를 목욕시킬때의 일입니다. 특히 한일자로 금만 그어진 그녀의 딱딱한 오른쪽 가슴을 문질러 내릴 땐 같은 여자로서 심한 마음의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는 곧 죽을거지만 난 아니야, 난 너처럼 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의 숨을내쉬는 나 자신에게서 야누스의 두 얼굴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B가 얼마전에 나를 위선자라고 몰아세울 때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사실 그건 맞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 입힌 B를 자리에 뉘어 놓으면, B의 운문사 비구니 같은맑은 모습이 더없이 예쁘게만 보입니다.

나도 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때로는 환자를 돌보기 위해 집을 나설 때 가기싫을 때도 많습니다.그들을 씻길 때 비지땀을 흘려야 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을 들만질 때 힘도 듭니다. 그런데일을 할 때마다 나는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 나오는지, 일단환자의 몸에 내 손이 닿기만 하면 나는 신들린 듯 신나게 일을 합니다. 하기싫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즐겁고 감사하게 합니다.

혈액 순환이 잘 안되는 B의 몸을 마사지 하고 지압을 해 주면서 나는 진정 B에게 고마운 마음이들었습니다. 그녀의 피부와 내 손바닥이 마찰될 때 우리는 나날이 한겹씩 사랑과 신뢰가 쌓여 가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내 몸도 분명 왕성히 피가 잘 돌아 더 건강해 지는 것 같았구요. 그러나 무엇보다 더 소중한 것은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 가슴 가득 평화를 듬뿍 안고 오는 것입니다.그러니까 내가 B를 돕는 것이 아니라 B에게서 나는 훨씬 더 귀중한 것을 많이 얻어 온다고 할수가 있습니다. 확실히 나는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는 수단꾼인가 봅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가 끝나고 다시 X레이를 찍어 나온 B의 결과는 아무 차도도 없이더 악화된 상태였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이젠 더 이상 어떤 치료도 해줄 게 없으니 진통제를 가지고 집으로 데려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B의 얼굴빛은 완전히 잿빛 사자(死者)의 얼굴 그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믿고 있는 절대자를 자기에게도 소개를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무당도 귀신도 다부질없는 것이라고, 그러나 내가 믿는 하느님이라면 자기를 받아 줄 것이라면서. 그녀는 내 생각보다 의외로 쉽게 수용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 옴을 그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민감하게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가 최후의 깃을 풀고 싶어하는 조물주를 그녀에게 기꺼이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의탁하여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을 갖도록 하는데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혹시 마음에 걸리는 일들이 있는 사람들에겐 전화로라도 화해하도록 주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에게급히 연락을 취해서 가급적 B의 병상을 그 남편이 지켜 주기를 이야기했습니다.그 무렵 어느 공휴일 전날 밤, 남편이 모처럼 기분좋은 얼굴로 나를 불렀습니다. 화왕산에 진달래가 피기 시작한다는데, 우리 내일 점심 준비해서 갈까? 전엔 당신과 산행도 자주 했는데…

그러나 나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왜 그래? 다른 계획 있어? 그가 물었습니다.

저어- 사실은 내가 돌보는 환자가 며칠을 못넘길 것 같아서요. 저녁에는 그녀의 남편이 병상을지키는데 낮에는 아무도 같이 있어줄 사람이 없어서… 뭐라고? 아니 그 사람 죽음은 이미 예측됐던 것 아냐? 그리고 내가 그짓 그만 두라고 한게 그게 언젠데, 왜 여태 정신 못차리고 있는거야! 그래 잘 해봐. 당신 정말 자알 났다!

얼굴이 벌개진 남편이 이젠 아예 베개를 들고 다른 방으로 건너가 버렸습니다.복수가 차서 공처럼 부어오른 배를 고통스럽게 끌어안고 B는 어느날 내게 헐떡이며 말했습니다. 언니, 난 언니에게 조금의 보답도 못하고 아무래도 이젠 곧 갈 것같아. 내가 거동만 할 수 있도록만 낫는다면… 우리 아저씨(남편) 오실 때, 성주 어느곳에 메기매운탕 잘 하는 곳을 알거든…언니 꼭 한 그릇 사 주고 싶었어…

나는 목 울대를 타고 넘어오려는 뜨거운 덩어리를 밀어 삼키며 내 앞에서 점점 사위어가는 연약한 한 인간의 모습을 멀거니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자신이 한없이 슬펐습니다.

이튿날 캄캄한 새벽, 내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돌봐 주지도 못했어요 으으엉……"

B의 남편의 짐승울음 같은 절규가 내 심장을 녹이고 있었습니다.

뻐꾸기 왈츠곡 소리를 내는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벽시계를 올려다 보니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이층 사람들인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습관적으로 손가락은 대문 버튼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딱! 하며 대문이 열림과 동시에 어떤검은 물체가 쏟아지듯 마당안으로 휘청 들어섰습니다.

"사모님!"

기절 초풍할 일이었습니다. 비에 흠뻑 젖은 B의 남편이 물에 빠진 생쥐같은 몰골로 고개를 숙이"잠깐만 들어가 인사여쭙고 가겠습니다"

간 난 이제 큰일 났구나 싶었습니다. 가뜩이나 B의 일로 심사가 뒤틀려 별거 상태로까지 번진 남편과의 문제를, B의 장례도 끝난 오늘밤 나는 모든 걸 소상히 이야기하고 이젠 호스피스 일을 그만 두겠다고, 남편이 싫어하는 일은 앞으로는 하지 않을거라며 화해를 청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난 B의 남편이 나의 입장을 아주 난처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B의 남편은 슬금슬금 거실로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다음순간, 또 한번 예기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모님 절 받으십시오. 우리 집사람 외롭지 않게 만들어 보내주신 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B의 남편이 나에게 공손히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두번, 세번…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습니다. 부끄럽고 황당스러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습니다. 이 광경을 아까부터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서 있는 남편의 눈이 이젠 차라리 무서웠습니다. 나는 주방으로뛰어들어가 식탁위에 엎드렸습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뜻으로 이 일에 최선을 다했더라도 결과적으로 부부사이에 상처를 내고, 집안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었다면…… 내가 뭔데…… 온갖 상념이나를 괴롭혀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주방문이 열리고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죽은 듯이 그대로 엎드려 있었습니다. 이젠 그 어떤 비난의 화살이 날아와도 말없이 달게 받을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그런데 이것이 꿈일까요? 남편의 팔이 슬며시 내 어깨를 휘감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내가 놀라얼굴을 들고 그를 바라보았을 때, 그는 만면에 가득 웃음을 띠고 아주 오랜만에 다정한 눈길로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를 힘껏 꼬옥 안아주며 말했습니다."내가 졌다! 두손 다 들었어. 이제부터 당신이 하는 일 방해 안하고 적극 도와 줄거야. 난 당신이험하고 궂은 일 하는 거 못견디겠더라"

나는 그의 가슴에서 그동안에 쌓였던 서러움을 다 털어내며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내어 마음껏 울었습니다.

나는 이제 순례를 끝내고 이승을 하직하려는 가장 외로운 사람들 곁에 있고자 합니다. 그들이 사라지는 마지막길 모퉁이까지 따스한 마음을 담아 정성껏 손 흔들어 주는 배웅자가 되려 합니다.고통스럽고 수고로웠던 이세상의 여행길이었기에 그들은 마땅히 따뜻한 전송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간의 차이겠지만 언젠가 나도 가야할 그길에 슬픔도 두려움도 없이 평화로이 갈 수 있도록 나의 절대자께 가만히 기구해 봅니다. 이세상의 짧은 나들이길이 행복하고아름다웠었노라고, 세상은 정녕 살만한 가치가 있는 보람된 곳이었노라고 후회없이 감사하며 훌훌 떠나는 나의 모습을…….

"당신 뭐해? 빨리 안 나오고!"

대문밖에서 남편이 자동차 시동을 걸어놓고 나를 재촉합니다.

"다 됐어요. 금방 갈께요"

나는 어제 담근 김치와 몇가지 밑반찬을 챙겨 급히 밖으로 뛰어나왔습니다. 뒷좌석엔 벌써 드라이버, 망치 같은 것들이 들어있는 연장통이 실려져 있었습니다.

이틀전에 나는 제2의 B를 처음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이제 갓 마흔을 넘어선 나이였고,남편을 일찍 잃고 중학교에 다니는 딸 두명과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골수암 환자였습니다. 피골이 상접한 몸피와 해골같은 얼굴에 유난히 맑은 눈동자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음식은묽은 미음만 조금씩 삼킬 뿐이었고 손가락도 까딱할 수 없는 말기 상태였습니다. 그녀와는 아직친해지지도 않았고 서로 조심스러운 사이이지만 나는 그녀와도 곧 좋은 사이가 될 것이라는 것을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나는 도움을 청했습니다.

"새 환자집에 가 보았는데요, 부엌문도 삐걱거리며 떨어지려 하고요 초인종도 고장나서 못쓰게되었던데요"

그랬더니 남편은 크게 웃으며 내게 한가지 조건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런 것들 고쳐주겠다고 하면, 오늘밤 당신 나한테 지압 한번 시원하게 서비스 해줄거야?"사실 나는 그동안 병원에서 배운 물리치료법과 지압법들을 시험삼아 남편에게 시범을 보였었는데, 그게 하루종일 지쳐 있었던 남편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주는 효과를 일으켜 대단한 호평을 받았었거든요.

4월 바로 들어서면서 B를 잃었을때, 나는 엘리어트의 시처럼 4월이 잔인하다고 울었습니다. 진달래꽃 빛깔이 하도 고와 또 울었습니다.

"B, 천상에도 진달래가 피었는지? 해마다 온 산야에 진달래꽃이 뒤덮일 무렵이면 B, 네가 많이보고싶을 거야 오랫동안……"

아름다운 계절 4월, 풀빛도 나뭇잎도 아기처럼 맑은 4월, 연록색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달리는 남편과 내 어깨위로 이 어쩐 신의 크나큰 은총인가요? 무수히 쏟아지는 화사하고 눈부신 이 햇살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