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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여성생활체험기 공모 우수작

"부엌에서 발견한 불국사" '시고모님'

"어휴! 정말 어려운 분이다"하고 누구나 이렇게 말할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살면서 그리자주 만나지 않고, 스쳐지나가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독 나에게 그 '시고모님'이라는 단어는 늘 옥빛 치마저고리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시어른은 시골에 계시고, 시고모는 대구에 계시기 때문에 시댁의 다른 분들보다 자주 뵙는 편이다. 결혼을 한뒤 지금까지 고모님을 뵐때마다 나는 새로운 지혜의 눈을 뜨게 되고, 깊고 넓은 사랑을보게 되며, 한없는 희생을 배운다.

고모님께서 하시는 하나하나를 잘 보고 나는 늘 다른 이들에게 칭찬을 듣게 된다. 친정 어머니가몸이 불편하셔서 제사 음식을 내가 마련하게 되면 모두들 "공부만 하다가 시집간 애가 어찌 이리도 잘 했니?"하고 칭찬하신다.

이 역시 고모님 덕분. 어느날 고모님이 보내주신 제사음식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정성스럽고 예쁘게 싸여진 분홍빛 보자기를 살며시 열어보니 정갈하기 그지 없는, 조금도 탄 곳이라곤 없는 정성담긴 음식들이 제자리에 앉아있었다.

"음식은 정성이지! 특히 제사음식은 더욱 더 그러하단다"

여린 목소리이지만 탄탄한 탄력으로 아주 강하게 내게 새겨주신 말씀이다.

고모님은 늘 나에게 칭찬만 해주신다. 자주 뵙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뵐때마다 칭찬으로 모든 시간은 채워진다.

"얘야, 너는 어쩜 그리도 점잖니?""범절있게 했구나""지혜롭기도 해라. 아이 키우느라 힘들지""깨끗하게 잘 했구나. 조심성이 많구나"

이루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말씀만 하신다. 처음 그런 말씀을 들었을 때 때로는 스쳐지나가는 말씀으로, 때로는 내가 잘하니까 하는 교만한 마음도 들었고, 또 듣기 좋으라고 하시는 말씀이지하고 가볍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날 문득, 한말씀 한말씀의 위대한 힘과 그 말씀 속에 깊숙이 자리한 사랑을 보았다.고모님은 언제나 다른 이들의 장점만을 말씀하셔서 그점을 장려해준다. 언제나 베풀고, 다른 이들에게 공을 돌리는 말씀만 하시며 기꺼이 스스로를 낮춘다.

그분을 닮으려 하고, 또 그분처럼 표현하려 하면서 나는 이해와 관용의 폭이 얼마나 자랐는지….아이들 교육에 질책보다 칭찬이 더 좋다고 배웠지만, 생활 속에서도 당연히 그러함을 알기까지고모님의 도움과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나는 알게 되었다. 그 칭찬은 내가 잘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고귀한 사랑으로 지켜주고 관용과 인내로 나의 변화와 성장을 기다려준 고모님의 훌륭한 덕성(德性)때문임을!그분의 삶속에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정신문화가 올올이 새겨져있음을 늘 본다. 시아버님께서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였다. 입원실을 알려드리는 전화를 끊은지 얼마되지 않아 "얘야,네가 고생이 많구나, 고맙구나"하며 들어서셔서 내놓은 곰탕국물, 김, 물김치, 명태조림, 시금치무침….

"오빠요. 드실만한 것이 없지요. 이거 한번 드셔봐요"

매일 반찬을 바꾸어 병실을 찾았다. 이런 반찬들속에 담겨진 정성과 사랑에 나는 부러움과 두려움으로 떨었다.

'우리 오빠가 아프다면 나는 저리할 수 있을까?'

언제나 병실에서 두손으로 아버님의 손을 꼭 감싸시고 웃으시며 두런 두런 얘기를 하시면서도,병실밖에 나가시면 말없이 눈물을 닦아내시던 그 모습에서 오누이의 사랑을 나는 보았다. 남매라는 것, 피를 나누어 가졌다는 것의 소중함을 나는 그제서야 절실히 느꼈다.

아버님의 손을 꼭잡은 고모님 두손의 사랑은 그댁 부엌 그릇에도 채색되어 아름답게 제 빛을 발하고 있다. 고모님댁의 그릇들은 언제나 웃고 있다. 가지런히 선반위에 놓인 컵들.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세월을 보여주는 양은 냄비들. 식기대에 말가니 자리한 식기들.

집이 어려워서도 아닌데 그 옛날 쓰시던 그릇들의 상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낡았다. 오래된 양은 냄비 역시 버릴만도 한데 얼마나 힘들여 닦아놓으셨는지 늘 윤이 난다. 그 그릇들을 보면 고모님의 검소함과 그 그릇에 대한 애정이 파도처럼 내 가슴에 달려든다.

그리곤 나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 집에서 결혼할때 마련한 그릇 냄비 컵…. 새로 구입한 것, 다른이들이 쓰던 것, 이집 저집에서 쓰지 않는다는 것이 모두 모였다. 다른 분들이 주셨기에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서 깨끗이 닦고 가지런히 놓고, 주신 분들의 사랑도 고이 간직한 지금,이 모든것이 고모님 덕분이다.

요즘 아파트 단지에는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버리는 물건이 수없이 많다. 세월이 흐르고수많은 세대가 바뀌어도 검소함은 우리의 미덕이어야하는데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검소와애정이 넘치는 고모님 댁에서 하는 설거지는 즐겁다. 그곳에서의 설거지는 내 마음까지도 깨끗이청소되어 설거지 이후의 나의 몸과 마음은 하늘을 난다.

좋은 외제 그릇의 화려함도, 새로 구입한 식기들의 깨끗함도, 현대적 감각의 세련미도 고모님의손길을 수없이 거친 그릇의 정결함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그릇들에는 생명이 있다. 그것들이 모두 살아서 서로 대화하고, 나에게도 말을 건네온다.

어느날 고모님은 자장면을 먹을때, 옴폭 파인 하얀 보시기에 물김치를 담아 상 가운데 놓으셨다.순간 나는 상에 꽉잡힌 균형을 느꼈다.

'이를 두고 마디에 맞는 차림이라고 하는구나!'

학교 다닐때 3첩, 5첩, 7첩, 12첩 반상차림을 배우면서 맛있는 반찬 많이 두고 먹으면 되지 이렇게 귀찮은 차림새를 왜 하냐던 생각이 그제야 바뀌었다.

밥 국수 등 주식 종류에 따라 마디에 맞는 상차림, 생활자체가 조화요 중용이었던 우리 선조들의문화를 상차림의 어울림에서 나는 보았다. 반상차림의 어울림! 그것은 바로 격(格)이요, 범절(凡節)이요, 중도(中道)였다. 그래서 옛 시어머님들은 며느리가 다 차린 상차림을 한번 더 살펴보시고손을 대셨나보다.

결국 세심한 재료구입과 정성스러운 조리, 음식에 알맞은 색과 크기의 그릇에 알맞은 양의 음식을 담는 것, 그리고 마지막 상차림에서 제자리를 찾음으로써 음식상은 완전함을 가지게 되는 것인가 보다.

생활 곳곳에서 이러한 완전함, 중용의 삶을 지향한 우리 선조들이기에 고모님께서 반상차림을 학교에서 배우셔서가 아니라 당신의 어머니 시어머니 그리고 그 선대를 보시며 그냥 자연스럽게 어울림을 만들어내시는가 보다.

지금 대다수의 젊은 주부들은 그 어울림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싶어 안타까움이 자리한다. 번거로움보다 간편함이라는 미명아래 우리 현대여성들은 자연스러운 어울림, 우리 선조들의 품격을전해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마디마디에 맞는 범절이란 것이 요즘과 같이 신속화, 기계화, 인스턴트화 된 주부들에게 번거롭게만 다가와 멀리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또 생활이 핵가족화되면서 젊은 주부들이 본보기가 없어서 우리 젊은 세대가 바른 방향을 잡지못하는 것은 아닐까. 맞벌이한다고 가족을 돌아볼 시간이 줄고, 음식은 시집이나 친정에서 갖다먹게 되면서 우리 젊은 주부들은 손맛을 잃어가고 가족들보다 나를 앞세우게 되는 것은 아닐까. 편하게 빨리하는 능력만 평가하고 일회용을 과용하면서 우리들은 사람과 사물의 소중함을 잃어가고나 있지않을까. 이런 저런 근심이 밀려든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 고유의 어울림들이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된다.물론 나도 아직 살림을 깨끗하게 가지런하게 하지는 못한다.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고 청소 정리한 뒤라도 어느새 모든 것이 어지럽게 자리한다. 고모님처럼 하는 것이 때로는 힘이 든다. 그래서대충 그냥 두게 되고 모든 것은 금세 제자리를 잃어 버린다. 그 잃어버림은 결국 내 마음이 어수선할 때이고, 마음을 정돈하게 되면 어느새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게 됨을 보게된다. 상을 차릴때도 마찬가지이다. 내 마음이 평정을 잃을때, 아무리 많이 차려도 상은 허전하고 음식맛조차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내 사랑이 이곳 저곳 흘러넘칠때 밥상은 그럴듯한 상차림을 이루고음식의 감칠맛은 비길 데가 없어진다.

아직 마른 행주질과 그릇을 제자리에 두는 일은 내 소임이 아니다. 고모님의 마른 행주질과 정리가 끝난 그곳에서 나는 불국사를 발견한다. 청운교, 백운교, 다보탑, 석가탑, 처마끝 마루선과 맞닿은 하늘.

모든 사람이 한 일이었으되, 이리저리 옮겨보며 맞춘 것도 아니요, 허물고 짓기를 수없이 반복한것도 아닐텐데 장엄한 조화를 이루는 불국사!

그곳에 들어서면 편안함을, 자유로움을,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하나하나가 다 특별하면서도 제자리에서 제 향기를 발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 신비롭기만 하다. 좌우, 위아래, 동서 어느곳에서탑을 보아도 치우침 지나침 모자람이 없는 모습으로 주변과 함께 하는 숨결의 조화, 기운의 조화와 평화와 해탈의 자유를 표현해놓은 불국사를 나는 고모님의 부엌에서도 본다.그러나 현대 젊은 가정에서 고모님 부엌 모습을 찾기 어렵듯 우리의 유형 문화재도 요즘은 그 원형을 보기가 쉽지 않다.

언젠가 해인사를 들렀다. 절 턱밑에까지 아스팔트로 길을 내어 그 아름다운 홍류동 계곡의 원래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예전엔 그 물길을 따라 소로가 있었으리라! 분명 우리 선조들은 그 계곡까지도 품고 해인사를지었을 터인데……'

경내에 들어서자 그나마도 새로 지은 건물들로 본래의 조화로운 모습을 알 길이 없었다. 태조사,제2석굴암, 갓바위, 동화사에서도 나는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엔다.

우리 선조들은 우주의 숨결, 자연의 기운을 흐트리지 않으며 조심하고 경건하게 자연과 하나되기를 힘써 조화의 장엄한 문화를 이루어냈건만 오늘을 사는 우리는 소중한 유산에 편리와 이해를따라 덧칠을 해대어 이제는 원형을 거의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문화유산은 문화재 관리를 담당하는 정부의 부서도 있고, 또 그것을 아끼는 이들도 많아서 그나마 또 다행이지만 우리의 생활속에서 살아있는 무형의 문화가 사라져 가는것이 더욱 가슴 아프다.

나는 시고모님의 부엌에서 살아숨쉬는 우리 무형문화를 보며, 작년에 92세로 작고하신 외조모님의 행보하심, 글읽으심, 말씀하심, 앉으심, 진지드심과 마주보시는 눈길에서 지금 우리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는 우리 생활문화의 뒷모습을 보았다. 이 시대에 걸맞은 주부로서의 모습은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당당히 서서 나날이 새로움을 덧입으면서도 조화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시고모님댁에서 비록 마른 행주질까지는 못하더라도 설거지라도 배울 수있는 시간이 즐겁다.

이정숙(대구시 수성구 범어1동 191의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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