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생태계 이야기-질경이의 삶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은 서로 잡아먹거나 경쟁, 공생, 기생등 다양한 형태로 얽히고설켜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잠시도 편안할 날이 없다. 뿐만 아니라 추위나 바람, 더위, 건조한 날씨, 부족한 양분등 좋지 못한 자연 환경에도 견뎌내지 않으면 안된다.

질경이 경우를 보자. 질경이의 잎은 먹을수 있고 종자는 차전자(車前子)라 하여 변비에 좋은 약재로 쓰이며 옛날 민간에서는 차로도 이용했다고 한다. 이 질경이는 전국 곳곳의 길가나 빈터는 물론 지리산 천왕봉, 설악산 대청봉과 같이 높은 곳에서도 살아간다. 이와 같이 분포범위가 넓은 식물은 흔치 않다. 그러나 질경이는 낙엽이 많고 여러가지 영양분이 풍부한 좋은 환경에서는 살지않는다. 대신 항상 사람들이 다니는 시골길이나 등산로와 같이 밟히기 쉬운 곳에서 주로 살아간다. 질경이라 불리는 이유도 이런 좋지 못한 환경속에서 끈질기게 살아가기 때문이다.질경이를 화분에 심어 물과 비료를 충분히 주면 상추처럼 잎이 커진다. 이런 점에 비추어보면 질경이도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척박하고밟히기 쉬운 길가를 삶터로 삼을까? 아마 다른 식물과 경쟁하는게 생리에 맞지 않아서 그런지도모른다.

질경이의 형태를 유심히 살펴보면 오랜 세월에 걸쳐 길가 환경에 적응되어 왔음을 알수 있다. 줄기가 없으며 잎은 뿌리에서 바로 나와 지면에 붙어 있어 훼손될 염려가 적다. 또한 쌍자엽식물에속하는데도 잎이 두껍고 잎맥이 평행맥이라 사람이나 달구지등에 의해 짓밟혀도 잎이 쉽게 손상되지 않는다. 그리고 뿌리는 땅속 깊이 들어가고 꽃들은 아주 작고 볼품이 없어서 사람의 눈길을끌지 못한다. 꽃대는 탄력성이 있어서 부러질 염려가 적다. 또한 작고 많은 종자를 생산하는데다가 종자에 물기가 묻으면 표면이 끈적하게 되어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 붙어서 먼 곳까지 운반된다. 깊은 산 등산로에서도 우리가 쉽게 질경이를 볼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질경이는 이와 같이 다른 식물이 살기 어려운 환경에 잘 적응하여 살고 있다. 경쟁에 뒤떨어진다고 안달하고 주어진 환경 나쁘다고 탓하는 우리 모두는 좋지 못한 환경에 지혜롭게 적응한 질경이의 삶을 한번쯤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조영호〈영남자연생태보존회.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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