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 속의 과학-이웃집의 토토로

"核공포 그린 애니메이션" 작년 10월에 열린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호기심이얼마나 대단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영화제였다. 1백71편이나 되는 세계 각국의 영화들 중에서일본 애니메이션인 오토모 카츠히로의 메모리스 와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는 수많은 영화광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비록 실패했지만, 올해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도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일본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겔리온 을 상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뒷얘기도 있다.엄마찾아 삼만리 나 미래소년 코난 을 보며 동심을 키워갔던 청소년에게 이웃집의 토토로 나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같은 일본 만화들은 마치 전래 동화처럼 친숙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암암리에 일본 애니메이션들의 비디오를 복사해서 돌려 본다거나, 어설픈 편집과 더빙으로 덧칠된 작품들을 열심히 시청하는지도 모른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핵전쟁의 공포를 경험한 그들의 피해의식을발견할수 있다. 지난 국제 영화제 참가작인 메모리스 의 마지막 에피소드 대포의 거리 는 특히그러하였다. 영화는 단지 전쟁을 수행중인 어느 미래의 이동도시에서 살아가는 소년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 매일매일 적의 도시를 향한 포격이 반복되고, 학교는 학생들을 훌륭한 포격수로 양성하기 위해 교육한다. 여자들은 포탄제조공장에서 쉴새없이 작업해야 하고, TV와 라디오는 매일같이 포격의 성과와 전쟁상황을 방송한다. 이 어처구니 없는 도시에서 훌륭한 포탄사수를 꿈꾸며살아가는 소년의 하루가 담담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전쟁이 일상이 되어 버린, 그래서 왜 전쟁을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가는 소년의 섬뜩하리 만치 멍한 눈동자가 전율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그 속에서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전쟁의 후유증을 읽는다. 진지하고 장엄한 작품에서 가벼운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만화에는 핵폭탄경험의 상처가 남아 있고 지진의 피해망상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어느 나라든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기야 마찬가지겠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더욱 절실한 것이리라. 현실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장르인 애니메이션에서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일본의 현실과 그들의 내면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정재승〈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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