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나무의 속삭임

말없이 한 자리에 서있는 식물들이 자기들끼리 인사도 하고 말도 하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면아마도 놀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낮에 활짝 핀 꽃들은 밤에는살며시 오므라 들며, 끈끈이 주걱은 화려한 모습의 꽃을 피우고 벌레가 날아들면 꽃잎을 오므려잡아먹기도 한다. 미모사라는 신경초는 건드리기만 하여도 즉시 잎을 오므리고 축 늘어져 버린다.이처럼 식물들은 외부의 자극을 느끼고 반응한다. 또 해충이 덤벼들 때에는 화학물질을 분비하여동료들에게 위험을 알린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식물은 태어난 곳으로부터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채 일생을 마감해야 하는 운명을타고 났다.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우리들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애처로운일이다. 요즘처럼 먼지가 많고 공기가 탁해진 도시에 서있는 가로수는 코도 풀지 못하고 기침 한번 못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묵묵히 참아내고 있을 뿐이다.

식물도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는 생물이므로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어려운 환경조건을 이기고 살아남고자 노력한다. 공해에 견디는 힘이 강하여 가로수로 심어진 은행나무들이 가을을 맞아 노랗게 물들고 있다. 그러나 더욱 심해진 공해 때문에 생존의 어려움을 느낀 은행나무들이 많은 열매를 맺었다.

대도시 주변의 소나무들도 유달리 솔방울을 많이 맺고 있다. 공해 때문에 죽어가면서도 많은 씨앗을 퍼뜨려 자손들에게는 보다 나은 곳에서 자라게 하려는 생물적인 본능이다. 말 못하는 은행나무나 소나무가 과연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느끼고 서둘러 씨앗을 많이 만들어내려 한다는 것을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에게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갈 권리와 능력이 있다는 것은 생명의 경의를 느끼게 한다.

〈이재열-경북대교수.미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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