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언자도 아닌 주제에 늘 고향에서 서운한 대접을 받았다고 느껴왔다. 아마 고향이라는 귀속감에 따르는 기대치가 높은 탓에 생기는 흔한 감상일 것이다. 어쨌든 그간의 내 삶을 가만히살펴보면, 오히려 집 밖에서, 그리고 고향인 부산 이외의 지역에서 매사가 욕심 이상으로 잘 풀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곤욕스러웠던 부산에서의 강사생활을 마치고 의외로 이곳 전주의 조그만 대학에 임용되자, 필요이상의 애향심으로 무장한 이웃들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아쉬워했지만 나는 계모의 그늘에서 가출하는 콩쥐의 심정으로 선선히 이 낯선 곳에 발을 옮겼다.나는 소위 '지역감정'의 볼모가 된 적은 없었다. 이것은 내 심성 이전에 내 삶을 주도하는 사고방식이나 행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주로 경상도에만 붙박혀 살아온 나에게 과연 '전라도'는낯선 땅이었다. 당연히 고향이 아닌 곳에서 느끼는 인상이야 우선 낯설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전라도에 살게되면서 느꼈던 그 낯섦은 표정과 인상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와 구조의 문제라는 점에그 특이성이 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안정되고 주변이 눈에 들어오게 되면서 나는 생생한 체험을 통해 이곳 전라북도의 소외상을 알게 되었다. 책이 일러주던 것을 이곳의 지형과 풍물, 그리고 언어를 만나면서그 실체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체가 이곳 지식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쉽게, 그러나절실하게 드러나는 것을 접하면서 나는 이입(移入)된 아픔에 몸을 떨었다.
아는대로 남한 근대화의 축은 주로 경부(京釜)의 이원구조였고, 부산과 서울에서만 살아왔던 나의체감(體感)에 잡힌 근대화 역시 그 구조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내 전라도 생활은 작금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근대화 비판담론이 추상(抽象)으로 날지 않고 그 터를 얻게하는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사회학적 분석만으로 쉽게 드러낼 수 있는 영호남 대립구도와 이에 따른 지역패권주의의 출발점은 박정희 정권 아래의 3선개헌을 잡는 것이 보통이다. 그 내력은이미 여러 논자가 세세히 밝힌 바 있어 진부할 정도다. 또 여러분야에서의 기득권을 특별히 경상도가 독식해왔으며, 특히 전라도가 소외되어 왔다는 사실은 이미 자세한 통계를 통해서 상식화되어 있다. 혹자는 내부식민지를 말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는가.
근대화의 성격과 관련된 사회구조적 차별 못지 않게 중요한 사실은 역사 감각이다. 전주에 살게되면서 나는 오래전 교과서에서 얼핏 스쳐지나가고 말았던 우리역사의 한 부분을 손 끝에 잡힐듯 다시 느끼게 되었다. '백제'말이다. '백제예술전문대학'이니, '백제쇼핑'이니, '백제식당'을 만나는 것은 내게 조금 과장한다면 '충격'에 다름 아니었다. 아, 얼마만의 백제인가. 그 '백제'가 아직도 살아 있었던 것이다. 경주로만 내빼던 여행은 말할것도 없지만, 윤대녕의 단편 '신라의 푸른길'이니 현인의 '신라의 달밤'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남겨놓은 흔적을확인하는 것은 그야말로 '이산가족'을 다시 만나는 감동이었다.
강연이 잦은 나는 다니는 곳에서마다 자주 말한다. "전주(全州)'란 '완벽한 고을'이라는 뜻이지요.나는 전주에 살게되면서 그나마 남한이라도 이제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전라도에 사는 뜻? 그것은 바로 우리 근대화의 뜻을 캐는 것이며, 나아가 우리 역사의 뜻을 캐는 것이아니고 무엇이랴.
〈한일신학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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