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낭당.
1천년을 이어온 한(恨)과 기원(祈願)의 응집소다. 굵은 돌, 작은 돌, 새끼손을 잡고 야반도주하던아낙의 돌, 쉬어 넘던 등짐꾼의 돌, 붉은 고사댕기 한 감 끊어올 남편을 기다리는 젊은 아내가 던진 돌... .
팔공산 한티재(군위-대구)를 앞 둔 오르막길. 가호1리. 옛날 같으면 고개길을 앞두고 한숨 됫바가지는 흘려야 했을 길. 가호교 옆 도로 오른편. 여섯가닥 굵은 느티나무 서낭목을 기대고 돌무더기가 자리잡고 있다. 굵은 막돌을 밑에서부터 쌓아올린 돌탑형식. 선돌형의 윗돌에는 삼베천을 감고새끼줄을 동여맸다.
애타게 빌 수 있는 곳. 침을 뱉어 한스런 사람살이를 원망할수 있는 곳. 서낭당은 무심한 돌무더기가 아니다. 눈물과 한숨, 슬픔과 원망, 애탄 기다림의 돌들이 옹송거리며 박혀있는 기복(祈福)의돌무더기다.
서낭당은 고갯마루나 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돌무더기. 그러나 이와같은 돌무더기 서낭당 형태가현재까지 남아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오히려 오래된 수목(당나무)에 가옥형태의 신당(당집)이결부된 경우가 대부분. 돌무더기 서낭당이 개인적인 기원신앙이라면 신당형태의 서낭당은 마을공동체 신앙으로 자리잡은 경우. 모두 서낭신앙의 제단이다.
바다는 해신당, 산은 산신당, 평야엔 동신당으로 불리기도 하고 믿는 대상의 수에 따라 복수당,단수당으로 나뉜다.
바다 곁 마을은 주로 당집형태. 감포에서 영덕에 이르는 해변 마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기슭에는 어김없이 당집이 있다.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삼정 3리. 바닷바람을 '된 통' 맞는 언덕배기. 당집이 바다를 내려다 보고있다.
반기는 것은 실성한 여인의 고함소리. 30대 여인이 바다쪽을 보며 쌍욕을 해댄다. "이 놈들아, 떼먹기는 왜 떼먹어…니 혼자 맛있는 거 먹고…" 앞뒤가 안맞는 원망과 서러움의 표시. 찡그렸다가갑자기 독기를 품은 얼굴로 양재기를 던지며 "X같은 넘(놈)들…"하며 욕을 내뱉는다. 바다맛이 난다. 바다가 쓸어간 남편, 망가진 인생, 원망과 서러움의 복받침… 그러나 옆에 있던 노인장은 "원래부터 좀 모자랐어"라며 바다맛을 느끼려던 상상력에 물을 끼얹는다.
쇠락한 당집. 쩌귀가 떨어져 덜렁이는 문짝, 파헤쳐진 바닥. 그러나 돌담만이 정갈하게 둘러처져있다.
탐탁지 않은 표정을 보더니 노인장은 옆마을 당집이 잘 돼 있다고 조언한다. 석병 1리. 지난해 새로 개수한 당집. 그러나 알루미늄 문에 시멘트 기둥, 시멘트 기와, 시멘트 마당. 양지바른 '명당'이건만 시멘트로 '도배'된 신식 당집.
'두일동리사지신위'(斗日洞里社之神位)란 위패가 두개 나란히 모셔져 있다. 골매기('고을막이'. 최초로 마을을 개척한 자) 최씨 유씨 두분을 기리는 것.
내륙 마을보다 바닷가 마을의 신심(信心)이 돈독하다. 아무래도 바다라는 험악한 상황 때문인 듯.영덕까지 이르는 거의 모든 바닷가 마을이 당나무나 당집을 두고 매년 동제를 올리고 3년만에 한번씩 '걸판진' 굿판을 벌인다.
영덕에서 청송 진보로 넘어오는 도계(道界) 고개 황장재(4백5m). 산적의 소굴이라도 있었음직한오지. 재밑 용추계곡을 사이에 끼고 아담한 당집이 하나 있다. 남자 하나 여자 둘 사이에 호랑이가 있는 탱화. 윗 부분이 낡아 아래로 쳐진 것이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옛날 고을 원님이 애첩(또는 두딸)을 데리고 가다가 호환(虎患)을 당해 만들어진 산신당. 요즘도무속인들이 '인사'하러 오는 곳이라고 한다. 이날(20일)도 소주병에 과일과 포들이 제단에 받쳐져있다.
새마을 운동의 '화마(禍魔)'. 경북지역 3백2곳(69년 통계)에 위치하던 서낭당이 현재는 많이 사라져 1백여곳을 추산한다. 그나마 잘 간직된 곳이 경북북부지역의 오지들. 영덕의 토곡 원전 복곡수안 낙평 신안에 이르는 12km 주변 마을에는 대부분 당집과 당나무가 있다.
그리고 안동과 풍산에 이르는 길, 군위에서 대구로 오다보면 있는 부계면 금매 가호 대율리등에서낭당이 간간이 눈에 보인다.
서낭당은 지리적 영역개념과 신앙공동체로서의 구심점 역할, 마을자치와 문화의 전당이다. 안동대임재해교수는 "서낭당을 미신으로만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인간과 자연을 잇는 중요한 슬기의 하나였다"고 말한다.
인간의 탐욕들. 고개마다 위치한 휴게소, 지천으로 널린 닭백숙집, 주유소, 그리고 해변길을 따라'명당'마다 차지한 횟집들….그 탐욕들 사이에서 서낭당은 무너지고 밟히다가 사라지고 있다.그나마 몇 군데 있는 서낭당은 한적한 가을길에 쓸쓸히 자동차의 경적과 매연을 먹고 있었다.〈金重基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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