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회창의 고장난「알라딘 등잔」

「알라딘의 등잔」, 주인이 무엇이든 원하기만 하면 무소불위의 거인 몸종이 나타나 입맛대로 척 척 주문을 해결해낸다. 궁전을 옮겨오라면 통째로 날라다 오고 미녀 공주를 원하면 코앞에 대령 시킨다. 돈 나오라면 돈 나오고 금 나오라면 금을 내준다.

신한국당의 이회창 총재가 지금 그 알라딘의 등잔을 쥐고있다. 그는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이며 총재로서 과거의 정치관행대로라면 대선 승리를 위해 필요한 무슨 지원이든 얻어내고 받아낼 수 있는 처지다. 정부부처의 보이지않는 지원이든, 눈치빠른 기업들의 돈보따리든, 당과 정보기관의 조직력이든 뭣이든 주문만 하면 펑!하고 거인이 나타나 「주인님, 무엇을 해드릴까요」라고 엎드 릴 위치에 있다.

그런데 최근 그의 알라딘의 등잔들이 모조리 고장나 버린것 같다. 아무리 뚜껑을 문지르고 주문 을 외워대도 말 잘듣던 거인 몸종이 나타나질 않는다. 비자금을 수사하라며 물증자료까지 끼워서 고발했지만 검찰이라는 거인은 「저는 안할래요」하고 빠져 버렸다. 더이상 검찰이라는 등잔속 거인은 여당총재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 경우는 수사유예의 부분적 당위성도 없 잖았지만 옛날같으면 상상도 못하던 이변이다.

고장나 버린건 검찰쪽의 등잔뿐이 아니다. 이총재로서는 또하나의 믿음직한 등잔속의 거인이었던 여당내 비주류 민주계들도 이제는 「주인님, 무얼 도와드릴까요」대신 「인기도 없는 네가 무슨 주인이냐」고 맞서고 있다. 큰 힘이 될 거인 하나가 또 등을 돌린셈이다. 등을 돌리는 정도가 아 니라 펑!하고 나와서는 딴전을 부리거나 거꾸로 발목을 낚아채고 있다. 그런상황에서 이총재로서는 마지막 남은 가장 큰 등잔의 거인인 YS에 미련을 두어왔다. 그러나 YS라는 거인 역시 문지르고 주문할때마다 스핑크스 얼굴같은 수수께끼의 모습만 보여오다가 결 국 결별단계까지 왔다. 전직대통령 사면 이야기를 주문하면 「불가」로 찬물을 끼얹고 검찰의 수 사유예를 묵인 동조해주는등 거인의 역할을 거부하고 있다.

더욱이 과거 선거때마다 여당후보를 위해 야당쪽의 정보자료를 수집해주던 안기부와 경찰조직의 지원마저도 끊기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주문만하면 손발처럼 움직여주던 거대한 정보 조 직이란 마법의 등잔마저 고장난것이다. 「얼마나 드릴까요」라던 대기업의 돈줄 거인들도 등잔밖 으로 모습을 내보이지 않은채 눈치만 보고 있다.

모든 마법의 등잔이 다 고장나 버린 상황이 된 것이다. 등잔 주인의 부덕과 정치역량부족일 수도 있고 등잔속 거인몸종들의 반란과 배신일수도 있다.

PC통신에 「박찬호가 군대안가는 방법은 이총재의 양아들이 되는것」이라는 이반된 민심이 뜨고 있는 상황으로 보면 등잔의 고장원인은 주인 탓일수 있다. 반대로 거인이 뒷짐을 진것이 공정선 거와 페어플레이를 위한게 아니라 경선후보의 인기지수와 정권재창출 불안을 계산해본 뒤의 뒷짐 지기라면 그 또한 주인의 부덕 못잖게 부도덕한 반란이다.

지지율에 나타난 민심이란것도 바람한번 잘못불면 민들레꽃처럼 방향없이 흩날리는 것임에도 지 지율의 소숫점 하나에 이리저리 줄바꿔 쏠려다니는 모습은 차라리 정당정치의 비극이다. 이회창 의 고장난 알라딘 등잔을 보면서 새삼 정치무상, 권력의 문턱에서는 의리도 신의도 아침이슬같다 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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