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해안 별신굿

에그! 한 많은 인생살이. 무에 그리 빌 것도 많은지.

풀어도 또 쌓이고 흩어도 또 모여드는 것이 한(恨)이다. 바다에 묻히고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하며해원(解寃)도 못하고 살은자 하며, 응어리지고 뭉친 사람살이, 혹독한 시집살이하며, 사는 것 조차힘든 삶의 무게하며…

음력 10월 초. 동해안 마을들에선 동해안별신굿(동해안 풍어제. 중요무형문화제 제82호)이 열린다.1박2일 혹은 2박3일동안 마을에선 온갖 신들에게 재를 올리고 굿으로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한다.

지난 27일 오후 1시. 동해 북부해수욕장이 내려다 보이는 땅울림국악원의 동해안별신굿 이수자김정희씨(38). 매년 찾아오는 동해안 별신굿. 올해는 구룡포 인근 강사 들포 대보등 세마을이 잡혀 있다.

벌써 34년째다. 부모 뱃속에서 '소리'를 듣고 서너살때부터 꽹과리를 손에 잡았다. 어릴때는 그냥흥겨운 소리가 좋았고 30대 후반, 이제 어느정도 문리(文理)가 터졌다. 동해안 별신굿 전승자 김석출씨의 조카.

한해에도 예닐곱번, 오구굿까지 합하면 10여번 굿판을 벌이지만 별신굿의 '흥'이 좋다. 강사의 별신굿은 범굿까지 포함돼 제법 큰 규모. 징 꽹과리 호적 장구등을 손질하며 묘한 '흥분'에 사로잡힌다.

포항에서 60여㎞ 떨어진 영해. 동해안 별신굿 화랭이(男巫) 송동숙씨(70)도 맏딸 송명희 큰사위김장길로 이어가며 일가를 이루고 있는 무속인. 경남북 해안마을의 별신굿을 김석출일가와 양분하고 있다.

울진 죽변면 봉수와 울진읍 연지2리의 별신굿이 열린다. 연지2리의 별신굿은 5년만에 열리는 것.마을사람들처럼 그도 벌써부터 부풀어 온다. 예닐곱살때부터 나선 굿판. 60년 넘게 해온 별신굿이눈에 선하다. "더럽고 미추한 영정 부정을 가셔냅니다. 남녀노소 물론하고 부정한 일을 절대 금하게 해주고 별신굿 마칠때까지 깨끗한 정신으로 치르게 해주소서…" 부정굿의 한대목을 해보이는그의 눈빛 소리 몸짓이 예사롭지가 않다.

별신굿은 무속인이 제사하는 큰 규모의 마을굿이다.

통상 넋을 위로하는 오구굿과는 달리 별신굿에는 축제의 정서가 배여있다. 목청껏 내뿜는 '소리'로, 춤으로, 그리고 웃고 떠들다가 일순 엄숙함에 슬픔까지. 오감에 칠정이 어울린 종합예술적 축제 한마당이다.

벨신, 벨순, 배생이, 별손, 뱃선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별신(別神)의 어원에 대해서 김석출씨 일가에서는 마을의 '골매기'(고을막이)외에 내림받는 신을따로 모셨다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또 송동숙씨는 "특별한 신을 모신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외서라벌의 '벌'에 해당되는 말로 벌신, 들신에서 유래됐다는 설과 함께 '뱃신'(船神)을 뜻하는 것이란 설에서 보듯 정확한 어원은 없다.

복합적인 부락제다. 먼저 유교식으로 제관이 축문을 읽고 끝내면 사제가 무당으로 바뀌어 굿판으로 변한다.

무당의 의식은 흥겹다. 원망하고 풀어주고 욕하고 다독거리는 것이 민초들의 감정그대로다. 그래서 쉽게 동화된다.

굿판은 삼십여거리가 넘는다. 가장 먼저하는 것이 나쁜 액기운을 씻는다는 뜻의 부정굿. 이어 마을의 수호신인 골매기신께 드리는 골매기굿이 이어지고 당마지굿 청좌굿 세존굿 성주굿 천왕굿심청굿 구능굿 손님굿 계면굿 용왕굿 거리굿등이 차례로 진행된다.

세존신 성주신 심청신 구능신 계면신에 잡귀 잡신등 모든 신의 '모음굿'이다.간간이 흥에 겨워 술도 마시고 춤도 추는 놀음굿도 낀다.

세존굿은 화려하고 성주굿은 엄하고 장수굿은 무섭다. 심청굿은 자근자근 얘기하듯해 눈물과 기쁨이 함께 한다.

별신굿은 마을에 따라 3년 혹은 5년 7년 10년에 한번씩 치러진다. 삼사 경정 축산 대진 소화 금진 노물 석리등에서는 10년, 송라면 조사에선 7년, 강구에선 5년에 한번씩 열린다.보통 음력 9, 10월에, 그러나 삼사에선 정월, 대진에선 음력 3월에 송라에선 음력 7월에 열린다.무속신앙에 기대는 민중의 심성도 엿보이지만 난장굿을 통해서 확인되듯 시장부흥책의 역할도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것은 별신굿을 통해 마을의 단합을 기원하고 정신적 일체감을 확인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별신굿이 끝나면 제관을 비롯해 모든 마을사람들이 '녹초'가 된다. 음식준비에 밤을 꼬박새며 흥겨워 춤을 추고 노래하다 보면 운신도 힘들 정도. 이를 통해 얽히고 설킨 갈등과 응어리진 한이일시에 풀리는 것이다.

한을 쌓기도 하지만 또한 이 한을 풀어내는 우리민족의 슬기가 별신굿에서도 엿보인다.〈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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