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너무 튀잖아! 따뜻한 느낌이 드는 색감을 넣어 봐".
"사장님은 신세대감각을 너무 몰라요. 시집인데 좀 튀는 게 낫잖아요".
18일 오후 4시 대일출판사 기획.편집회의. 장호병사장과 부원이 설전을 벌였지만 결국 경험많은장사장의 의견을 쫓았다.
곰팡내 나는 책을 괴나리봇짐속에 넣고 또다른 자기의 세계를 꾸렸던 선비. 수업시간 선생님 몰래 교과서에 끼워 넣고 읽었던 문고판. 이렇게 수백~수천년간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만들어왔다.
어느 시인은 개미가 사과껍질의 액과 양분을 빨아먹듯 책을 먹고 자랐음을 추억한다.전자매체와 컴퓨터물결로 '책의 종언'을 예측하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보화시대라고해서 책이 사라질 이유는 없다. 책은 책의 특성을 가지고 계속 존재해야 할 것이다"는 움베르트에코의 단호한 말에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위안을 받는다.
지역출판사들은 이런 시대적 조류와 열악한 환경속에서 생명력있는 책을 만들기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출판과정은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듯 많은 정성과 아픔이 따른다. 대부분 제발로 출판사를 찾아책을 내게되지만 기성작가에게 의뢰하는 기획출판도 많다. 우선시장조사를 거쳐 기획회의를 하고필진을 선정한다. 원고가 들어오면 전산조판을 하고 편집.디자인의 과정을 거친다. 이어 교정을보고 가책자를 만들어 검토한 뒤 인쇄에 들어간다. 대개 한 달 정도 걸리지만 작업중 시기를 놓쳐 사산되는 경우도 있다.
"쏟아지는 수준이하의 투고원고 선별에 몸살을 앓기도 하지요. 자신이 선별한 원고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은 편집자에게 더할나위 없는 행운입니다".
대일출판사 이상민씨(25)는 "원고의 가능성을 읽고 이를 재편집하는 과정은 다이니믹하고도 편집자로서의 성취감을 맛보게 해준다"며 진정한 에디터로 성장하기 위해서 거쳐야할 필수적과정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여러 출판사에서 퇴짜맞은 원고들이라 해서 베스트셀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1백50여만부가 팔린 김정현씨의 '아버지'(문이당)가 대표적 사례.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는 사람들의 태도는 협박형에서부터 읍소형, 설득형 등 다양하다. 고학력자가 늘고 컴퓨터확산이 글쓰기의 두려움을 없앤 탓도 있지만 "책 한 권 잘 쓰면 큰 돈 번다"는 한탕주의 경향으로 투고원고가 급증하는 추세라는 것. "내 인생도 기가 막힌다"며 자서전 출간을 의뢰하는 상담전화가 잇따른다.
최근 영덕의 한 젊은이가 4행시 시작을 들고 와 책을 내달라고 졸랐다. 서울에서도 여러 번 퇴짜를 맞은 젊은이는 섭섭함을 토로하며 몇날 몇일을 찾아와 떼를 쓰기도 했다.
'용의 비늘'이라는 미스테리 소설을 쓴 김모씨는 "용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사장이 용을 붙잡고있어 못날아간다"며 신속한 출판을 요구해와 소설이 많이 나가는 때를 기다리자는 편집부와 작은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서울의 대형출판사는 분과별심의를 거쳐 기획.편집.영업이 함께하는 편집회의와 간부회의에서 최종결정한다. 그러나 영세한 대구지역출판사의 경우 편집장이나 편집부원이 원고를 보고 사장이최종결정하는 형태.
지역작가들의 경우 대부분의 원고가 흐름을 앞서가기보다는 뒤쫓는 것이어서 출판으로 연결되는비율이 높지 않다.
표지와 안쪽 디자인도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 이 작업은 편집부원간 감각과 작품해석이 달라 가장 많은 논란을 벌인다.
박태은씨(23)는 "사장님의 경험을 인정하지만 표지디자인이나 내부 디자인이 마음에 안들경우 서스럼없이 찢어버린다"며 "자존심이 상하고 섭섭함도 크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섭섭함도 잠깐. 책이 나오고 반응이 좋으면 지난 충돌은 말끔히 씻어버린다.17년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장사장은 고민이 많다. 지역출판사의 경우 영세한데도 대중성과지역문화기여라는 두마리 토끼를 쫓아야 하기때문.
한때 대구는 출판의 메카였다. 6.25때 전선문화가 형성되면서 한강이남에서 최대시장을 형성했고대구소재 출판사가 서울로 진출, 대형출판사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세에밀려 10여개 출판사가 명맥을 이으면서 좋은 책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다.
각 대학 출판부도 학술서적 대학교재는 물론 외부작가를 유치, 일반인을 위한 기획도서를 내는등 왕성한 출판을 하고 있다. 영남대출판부는 올해 30여종을 발간했고 다음달 초에는 박영희전집을 낸다.
21세기는 전자책이나 컴퓨터로 책의 개념이 변할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정보혁명시대에꼭 이뤄야 할 출판운동은 종이책의 생존이라는 지적도 많다. '사람의 눈은 종이를 뚫는다'고 했듯시대가 어렵고 변화무쌍 할수록 독서를 통한 지혜습득이 필요하고 책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출판인들의 역할도 계속되지 않을까.
〈李春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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