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사 흐름바꾼 1587년

16세기말 서양제국은 넘쳐 나는 국가에너지를 해외로 돌려 패권전쟁을 벌였고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사상체계가 대립하는 민족국가 경쟁의 시기였다. 이에 반해 동양 특히 중국은 잘짜여진관료제와 군주제로 안정을 구가하고 있었지만 안으로는 썩어가고 있었다.

서로 관심분야가 다른 두 학자가 1587년 같은 해 동.서양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통해 20세기동.서양이 왜 다른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를 추적한 '아르마다'(개럿 매팅리 지음, 가지 않는 길펴냄)와 '1587년-아무 일도 없었던 해'(레이 황 지음, 가지 않는 길 펴냄)는 '역사는 필연이다'는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두 저자는 20세기 동양과 서양을 이해하는 열쇠로 왜 16세기 1587년에 주목했을까.1587~8년 스페인과 영국간의 아르마다 전쟁은 유럽의 판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1590년부터 불기 시작한 대위기시대의 신호탄이 됐기때문이다. 20세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사상의 대립만큼이나 당시 가톨릭진영에게 프로테스탄트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혁명으로 비쳐졌고거센 투쟁이 전개됐다. 저자는 20세기 상황이 16세기 유럽과 가장 비슷하며 당시 유럽인들이 급변하는 환경에서 어떻게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했는지 살펴봄으로써 현대 인류가 해결해야 할 과제의 해답을 구하려고 했다.

'아르마다'는 스페인과 영국 양국간의 전쟁사일 뿐만 아니라 16세기에 팽팽하게 맞섰던 프랑스와스페인, 영국과 스페인의 대립,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들 간의 종교분쟁, 네덜란드의 독립과 신대륙을 사이에 둔 경제적패권, 왕위를 둘러싼 정권획득 싸움의 양상을 폭넓게 보여주고 있다.남자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지닌 엘리자베스 1세, 무자비한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 기사도정신이투철한 시도니아 제독 등 생생한 심리묘사와 문학적 상상력이 가미된 독특한 화법은 소설을 읽는듯한 긴장감과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1587년-아무일도 없었던 해'에서 레이 황은 왕조 멸망의 징후를 특별하지는 않지만 1587년에 끊임없이 일어났던 사건들에서 찾는다. 황제가 어전회의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한 문무백관은 황급히 성안에 도열하지만 사실무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시작되는 이 책은 '1587'에서 이미 명조의 비극적 운명을 예견한다. 그만큼 황제와 관료들은 단절되어 있었던 것이다.황제였음에도 후계자조차 지명할 수 없었고 제위기간 내내 관료들의 반대와 간섭으로 무엇하나뜻을 이룰 수 없었던 만력제.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황제의 신임을 얻었으나 일찍 죽어 빛을 보지못했던 대학사 장거정. 변방의 오랑캐를 평정하고 명의 군사제도를 개혁코자 했으나 문관의 견제와 시기로 뜻을 이루지 못했던 고독한 장군 척계광. 자신이 주창했던 철학적 신념과 현실사이의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양심가 이지 등 여러 인물들이 겪는 천태만상의 사건을 통해 명조가 겪게되는 역사의 굴곡을 다뤘다.

당시 상황에서는 황제가 능력이 있는가 무책임한가, 고문관이 진취적인가 보수적인가, 관료들이청렴한가 부패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체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관료조직과 점점 복잡해져가는 명사회를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던 단순한 사회체제가 왕조의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는 것을 레이 황은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1587년 정해년의 연감은 실패의 기록이라고 결론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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