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시의 입술

올해 미국 최고의 '거짓말쟁이 상(賞)은 몽땅 저명한 정치인들에게 돌아갔다. 클린턴 대통령, 로 트 상원의원, 깅리치 미하원의장등이 영예(?)의 수상자들이다. 상을 받았으니까 영광일것 같은데 실은 상의 명칭도 그렇거니와 수상이유를 보면 그게 아니다.

미국 영어교사 전국위원회(NCTE)라는 단체가 24년째 시상해오는 '올해의 거짓말쟁이상'은 매년 무책임하고 기만적이며 고의적으로 애매모호한 용어를 사용한 공인(公人)들을 골라 뽑아 시상하 는 것으로 한마디로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을 '물먹이는'상이다. 특히 클린턴은 거 짓말쟁이상을 수상한데 이어 바로 얼마전 홍콩등에서 출간된 새로운 영어회화법 이란 책에서는 ' 클린턴'이란 자신의 이름이 '대통령'이 아닌 '정책 뒤집기'라는 의미로 쓰이는등 나라안팎에서 톡 톡히 무안을 당하고 있다.

재미난것은 공화당의 정적들로부터 그런 비꼬임을 당한 클린턴진영이 이를 맞받아 야당인 공화당 의 전직 대통령이었던 부시를 끌어다 '부시의 입술'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역공에 나섰다. '부시의 입술'이란 조어의 말뜻은 바로 '거짓공약'. 88년 대선 당시 부시후보가 '내 입술을 읽어라 세금인 상은 절대없다'고 공약해놓고는 당선뒤 이를 금방 뒤집어 버린걸 빗댄 말이다. 지금 대선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는 우리 정치권에도 각 후보들의 입술에서 국정분야별 공약과 정 책, 약속들이 거의 매일 수십가지씩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들의 입술만 쳐다보고 있으면 주식 붕 괴, 금융대란, 상장사부도, 대량실업사태 같은 위기가 마치 남의 나라 일처럼 착각될 정도로 대수 롭잖은 문제처럼 장밋빛 일색으로 비친다.

당장 길거리에는 부도와 감량기업으로 부터 쫓겨난 수만명의 실업자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 는 상황인데도 후보들의 입술은 3백만명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고 강변하고 있다. 국민소득은 3만달러로 올려주고 주택보급률을 당장 임기내에 1백%를 달성시킬 수 있다는 신기루같은 약속도 한다.

중소기업을 위해 20조원, 환경개선을 위해 6조원을 투입하겠다고도 했다. 마치 하늘에서 신의 계 시를 내리듯 꿈을 제시한다. 외채가 1천억달러를 넘어선 위기속에, 더구나 IMF규제 아래 도대체 수십조원의 예산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성이나 대책설명은 없다. 그저 '강화''보완'' 활성화''구축'이란 수사만 쏟아낸다.

최근 우리 후보들이 내놓은 그러한 공약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들의 입술이 부시의 입술처럼 느 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외교 통일안보는 '강한 전쟁 억지력보유'와 '꾸준한 통일 준비''공고한 평화 구축'으로 해결하고 경제는 부실기업 인수 합병의 '활성화'와 '강화'로 해결한다고 한다. 사 회복지의 '구축'과 환경사범의 '근절', 지원'확대'로 복지국가를 만든다고도 한다. 말의 허구가 아 닐수 없다. 우리는 지난 선거때마다 수많은 부시의 입술과 구체성 없는 현란한 말잔치를 보아왔 다. '믿어주세요'에서부터 '신한국건설'까지-.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만은 더이상 부시의 입술을 가진 자가 승리하도록 놔둬서는 안된다는 냉철 한 각오를 다질때라고 생각한다. 지난 12년간 입술을 제대로 읽어내지 않고 지역정서 따위의 바 람에만 끌려 던진 표의 결과가 바로 오늘날 우리의 참담한 모습 아닌가. 오늘밤부터 TV 합동토 론이 시작된다.

과연 누구의 입술이 부시의 입술인지 혜안을 뜨고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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