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외양간을 고치되…

소를 잃고 나서 맨먼저 해야할 일은 일단 외양간 부터 고쳐놓고 볼일이다. 이미 물건너간 일이고 당해버린 일인데 뒤늦게 손써본들 뭣하느냐 할수도 있지만 영영 소를 키우지 않으려면 모르되 다 시 소를 키워야되는 살림 형편이라면 외양간을 고치지 않을수 없다. 허술한 외양간은 그대로 두 고 새송아지를 사들여 봤자 또 도둑만 맞게 된다.

병자호란의 삼전도 국치(國恥)와 한일합병의 경술국치에 이어 또다시 국치를 당한 지금, 온국민이 통찰해야할 일은 잃어버린 소에다 미련을 두거나 식구들끼리 네탓내탓 가리기에 매달릴게 아니라 외양간의 어디가 어떻게 허술했던가 또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짚어보는 일이 먼저다. 더구나 몇 번씩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쳐본 집안이라면 그동안 외양간 고치는 방법이 잘못된게 없는지도 살 펴야 한다.

소 한마리를 잃는데도 허술한 외양간이라는 「원인」이 있듯이 하나의 국가가 몰락하는데는 휠씬 더 크고 복잡한 원인들이 있기 마련이다. 기기묘묘한 경제 용어 따위를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우리가 겪은 국치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몰락의 원인은 너무나 쉽고 간단한데 있었음을 알 수 있 다. 바로 부패정치세력의 당쟁이 빚어낸 편견과 아집, 권위주의적인 관료의식의 오만과 무지가 으 뜸가는 원인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일합방 그리고 오늘을 보면 어김없이 맞아떨어진다. 오늘날 외환보유고나 핵개발과 십만 양병설은 허약한 재정과 당쟁의 정치적 이해에 눌려 밀려나 고 일본 침략가능성을 놓고 벌인 서인(西人)사신과 동인(東人)사신의 논란 역시 당쟁선상에서 정 치적 논리와 편견에 의해 오판되면서 망국의 비극이 시작됐었던 것은 아이들도 아는 상식이다. 병자호란의 패전원인도 강화도 수비 책임자인 검찰사가 사전방어를 권고한 대신들의 우려를 묵살 하고 「원나라는 감히 침입하지 못한다」며 호언장담한 오만의 결과였다. 구한말 국제정세의 흐 름이나 경제개방에 대한 무지와 정보부재에도 불구하고 쇄국정책으로 일관한 집권층의 오만과 무 지가 한일합방의 씨앗이나 다름없다.

오늘 우리가 겪고있는 국치의 원인을 살펴보면 지난역사에서 똑같이 겪고 저질렀던 과오를 한치 도 틀림없이 반복하고 있다. 지도자는 원천적으로 무능했고 정치권은 정치적 이해에만 집착해 금 융개혁법안 등을 국회개회기간내내 계속 미루고 팽개쳤으며 경제부총리는 권위주의적 오만과 편 견에 사로잡혀 경제연구단체의 권고와 경고를 묵살해왔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 경제기틀이 튼튼하고 IMF지원은 필요없다」는 식으로 오만과 아집으로 일관했다. 그들과는 반대로 국난의 위기때마다 매번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쪽은 언제나 의병과 민초들이 었다. 이번에도 내핍과 절약, 수출노력등 외양간고치는 일은 몽땅 근로자와 국민 대중들의 몫으로 남았다. 정작 외양간을 제대로 지켜야 했던 최고책임자인 청와대와 경제부총리는 다수 국민들의 「인책」여론에 대해 「지금은 희생양을 찾을때가 아니라」거나 「벌준다고 될일이 아니라」며 발뺌하고 있다.

더 큰 책임이 있는 쪽이 오리발을 내미는식의 적반하장은 지난날 국치때도 없었던 일이다. 삼전 도 국치때는 전공이 있는 장수들조차 총체적 패전의 책임을 지고 죽어갔거나 스스로 자살의 형식 을 빌어 사사당했고 경술국치때 또한 숱한 우국지사들이 망국의 한을 통탄하며 자결로서 지도층 의 책임을 자책했다. 그러나 지금 이난국에서는 누구한사람 사과나 자책의 번민을 보이는 책임자 는 나타나지 않는다.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 없는데 인책론을 왈가왈부 하는것은 부질없는짓이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건지 해답은 한가지다. 가책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누가 소를 잃게 했는가를 따져내기 보다 함께 힘을 합쳐 한곳으로 나아가는「시노드」의 마음으로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더이상 소를 잃지 않을것인가를 생각하자 그것은 19일 아침에 드러날 새지도자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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