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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금융실명제 보완방안 의미

김영삼 정부의 최대 치적 가운데 하나인 금융실명제가 불과 4년반만에 '빈껍데기'만 남게 됐다.정치권이 지하자금의 산업자금화 등을 목적으로 그동안 논의를 거듭해 온 금융실명제 보완 방안에 대해 한시적이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무기명 장기채권(비실명장기채권) 3조원어치를 발행하고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까지 유보하기로 사실상 확정함에 따라 금융실명제는 '실명'의 위기를 맞게된 것이다.

'검은 돈'을 밝은 곳으로 이끌어 내 지하자금 소유주의 자금 조성경위를 밝혀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물린다는 금융실명제 취지가 정치권 및 재계의 요구에 따라 급기야는 근본부터 흔들리게 됐다.이는 국가부도위기까지 몰리는 등 경제가 벼랑끝에 몰리면서 장롱속에 퇴장된 지하자금을 산업자금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금융실명제로 자금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갖게 됐기때문이다.이처럼 현 정부에서 극구 반대 입장을 보여 온 금융실명제의 대폭 보완론이 무게를 실게 된 결정적 계기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에서도 지하자금의 양성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IMF는 이행조건에서 '금융실명제의 골격은 유지하되 보완이 가능하다'는 점을분명히 했으며 IBRD는 금융 등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량 실업사태를 조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했다.그동안 금융실명제 보완방안에 대해 마땅한 대응 논리를 갖추지 못했던 정치권은 IMF 시대를 맞이해 실업자를 보호하는 데 기금이 필요하며 그 기금은 IMF의 재정긴축 원칙 때문에 재정지출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한 것으로 파악되고있다.이 과정에서 정부는 IMF에 대해 한국 지하경제의 현실을 설명하고 고용안정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금융실명제의 잠정적인 유보가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IMF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지난 93년 8월12일 김영삼 대통령의'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이라는 긴 이름으로 전격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이처럼 급박하게 변화하는 경제기류속에 휘말려 만 4년4개월만에 형해만 남게 될 위기에 놓였다.이번 정치권의 금융실명제 보완은 실명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유보하고 지하자금의 출처를 묻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 매월 꼬박꼬박 소득세를 내고 있는 근로자 등 성실한 납세자와의 세부담 형평성문제를 야기하게 될전망이다.또 지난 5월 금융소득 종합과세 신고를 한 사람과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이 되는 금융소득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번 조치로 신고를 하지 않게 된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강하게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금융실명제가 도입된지 4년반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국민생활에 뿌리를 내린 금융실명제가 경제난을 구실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 경우 일반국민들의 비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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