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폭력. 섹스물도 좋다 무한경쟁

방송70주년. 그러나 각 방송사의 '시청률 포기선언'에 이어 의욕적으로 출발한 국내방송의 모습은 올한해 결코 '점잖은 70대'가 아니었다.

포기하겠다던 시청률을 붙잡기 위한 방송사간의 경쟁은 원색적인 상호비방으로까지치달았고 프로그램의 저질.폭력화는 날개를 달았다.

올해 최대 이슈로 떠오른 스포츠 중계를 보자. 10월18일 열린 월드컵 예선 한국 대우즈베키스탄 전 시청률은 69.4%%라는 기록을 세우며 그동안 국내 TV사상 최고였던 KBS2 드라마 '첫사랑'의 65.8%%를 가볍게 눌렀다. 여름 내내 오전에 생중계됐던 박찬호 야구경기는 60%%이상 점유율을 기록하며 '정상근무에 방해가 된다'는 경영자들의 불만까지 샀다. 이렇게 '큰 먹이감' 앞에서 방송3사는 '양보'를 잊었다. 중계권을 둘러싼 과당경쟁은 막대한 달러 낭비, 전파 낭비로 이어졌지만 방송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보 상자' TV는 올해 '폭력.섹스 상자'로서의 이미지를 더욱 굳혔다. 드라마의소재는 근친상간, 조직폭력, 황당무계한 귀신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넓히며우리나라에서 소설가, 만화가도 누리지 못한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구가했다. 올해 상반기 동안 방송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은 드라마의 수는 지난해의 2배. 청소년 보호법 시행에 따른 프로그램 등급제 실시.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광고시간 연장과 광고단가 인상, 오락프로그램 집중투자와 비인기 장르 축소 등 나름대로의 '합리적 경영'을 통해 불황속에서도 양적 성장을 거듭해 오던 방송사들은그러나 뜻밖의 철퇴를 맞게 된다. 바로 'IMF 방송시대'의 개막이다. 내년부터는 스포츠 중계권료 협상도 단일화되고 대형 쇼, 사치성 드라마의 수도 줄어든다. 그동안시청자들의 비난에도 끄떡없던 방송계가 '소'를 잃고 나서야 문단속에 나선 것이다.그러나 올한해 거둔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선거 후보자간 TV토론회로 요약되는 '미디어 정치시대의 개막', 교육방송원 출범 및 위성교육방송 실시,2차 지역민방 사업자 선정 및 개국, 케이블 TV2차 사업자 선정, 정부의 디지털 방송계획 발표 등 외형적으로는 푸짐한 성과를 거뒀다.

지금까지는 분명 배 안 부른 '첫술'이다. 이제 국내 방송계에는 애써 끼운 첫 단추를 잘 매만지는 일이 남아 있다.

〈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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