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문턱인 지난달 하순 문경새재의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여름과 가을동안 짙은 신록과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던 나뭇잎들은 땅으로 돌아가고 앙상한 나무가지들만 찬 바람속에 서 있었다. 간간이 중년부부와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보일뿐 인적조차 뜸했다. 담수조류를 조사하는 박정원박사팀은 지난 8월말 1차 조사에 이어 2차 조사에 나섰다.
이번 조사에서 물 속에서 사는 조류 이외에 흙속에서 적응해 살아가는 조류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남조류인 닥티로데케(Dactylothece)가 그 중 하나. 닥티로데케는 국내 미기록종으로 국내에서 발간한 조류도감에 나타나있지 않다. 현미경 사진에 나타난 닥티로데케는 알갱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마치 우주공간속의 행성과 같은 느낌을 준다.
닥티로데케가 국내 미기록종이라는 것은 이 종이 보기드물 정도로 귀하다는 것보다는 국내 조류연구가 빈약하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조사된 조류 수는 녹조강 1천1백여개, 황녹조강 29개, 은편모조강 2개, 담수갈조강 1개, 홍조강 9개, 유글레나강 2백27개, 남조강 3백27개, 황색편모조강 80여개등 1천7백여개에 불과하다. 조류를 미래의 식량으로 이용하기 위해 수만여종의 조류를 파악하고 있는 미국, 일본등 외국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난다.
담수조류를 전공한 국내 학자도 박씨를 비롯, 10명 정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 호수 한 군데에 수질 생태계를 연구하는 연구소가 10여개나 되고 그만큼 전문가도 많아 연구가 충실히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문가가 부족할 뿐 아니라 한국수자원공사가 수자원 확보와 병행해 생태계를 연구하는 실정이어서 조사 자체가 허술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박씨는 척박한 국내 조류연구 현실을 감안, 5년 이후에 알찬 조류도감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스티고네마(Stigonema)도 암벽과 토양속에서 적응해 사는 남조류. 얽힌 실타래처럼 이리저리 꼬여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크루코커스(Chroococcus)도 암벽과 토양속에서 살아가는 남조류로 작은 공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시계줄처럼 생긴 크레브소르미디움(Klebsormidium)도 토양속에서 사는 녹조류이다.
이러한 조류들이 습기찬 암벽이나 토양속에서 사는 것은 물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성공했기 때문. 가뭄으로 인해 암벽이나 토양의 습기가 마르면 조류는 이에 적응하기 위해 세포 2개가 합치면서 세포물질이 빠져나간다. 이 과정에서 접합자라는 것을 생성한뒤 활동을 중지한 채 가만히 있는다. 비가 와 습기가 생기면 세포분열과 광합성을 하는등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추위가 닥쳐와도 조류는 세포분열을 하지 않고 휴식기를 갖는다. 사람들이 겨울에 두꺼운 옷을 입고 움츠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별 활동을 하지 않고 지냄으로써 이를 극복한다.
녹조류인 장구말(Cosmarium), 팔장구말(Staurastrum), 반달말(Closterium), 흔들말(Oscillatoria), 오목장구말(Euastrum), 플레우로타에니움(Pleurotaenium), 히알로데카(Hyalotheca),남조류인 메리스모페디아(Merismopedia),심플로카(Symploca),톨리포트릭스(Tolypothrix)가 보인다. 황녹조류인 트리보네마(Tribonema), 유글레나류인 트라켈로모나스(Trachelomonas)도 채집된다.오목장구말은 장구말의 사촌이라 할 수 있는 것이나 현미경 사진으로 보면 윗부분이 들어가있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어 별개의 종으로 분류된다. 히알로데카는 정교한 세공조각이 새겨진 팔찌처럼 생겼다. 메리스모페디아는 수많은 포자들이 촘촘히 엉긴 벌집같은 모양으로 다른 조류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유글레나류인 트라켈로모나스는 붉은 잣열매같이 생겼다. 유글레나류는 세포벽이 없고 세포막만 있으며 편모를 이용, 물 속을 헤엄쳐 이동한다. 안에 빨간 점(eye-spot)이 있는데 이 기관의 역할을 두고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빚어져왔으며 현재는 엽록체의 일부분으로 빛을 흡수하는 색소체로 입장이 정리되고 있다.
조류는 이상 번식하면 녹조현상이 빚어져 수질을 오염시키기도 하고 집에서 마시는 수돗물 맛을 좋지 않게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수돗물 맛이 좋지 않을 경우 정수과정에서 쓰는 염소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은 조류때문인 경우가 많다. 물탱크가 햇볕을 받아 따뜻해지면 그 속에서 조류가 번식해 수돗물 맛을 좋지 않게 할 수도 있다.
박씨는 수질 오염이 심한 곳일수록 조류는 다양하게 나타나나 문경새재는 그렇지 않다 며 수질 생태계의 기초라 할 수 있는 국내 담수조류 분야는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한 실정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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