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들 가슴속 따스한 강물되어

'텅빈 충만'의 의미에 가슴뭉클한 감동을 느끼면서도 돌아서면 이내 욕심의 그물에 사로잡히는 우리들. 욕심을 비워가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종석씨(66.대구시 달서구 대곡동 주공가람1단지 115동 1804호). 40년을 평교사로 교단에서 보내고 지난 봄 명예퇴직한 그는 퇴직금의 10분의 1을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위해쓰기로 작정했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더구나 이젠 직장도 없어진 터에…. 상당한 결단이 요구되는 행동이었다. 매사 아내와 의논하는 그이지만 이번만큼은 미리 한뭉텅이 뚝 자른후 통고만 했다.

가난했던 그 옛날, 어머니의 눈에 핏줄이 터졌을때 누군가의 따스한 도움으로 무사히 치료받을 수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낯모르는 은인을 향한 감사의 뜻으로 영남대 의료원의 한 안과의사에게 5백만원을 기탁했다. 누구라도 좋으니 가난한 환자를 위해 써달라는 부탁과함께. 그리고 절대로 환자에게 자기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사정이 딱한 한 할머니환자가시술을 받은후 기어이 의사에게서 연락처를 알아내 고맙다며 전화를 해왔을때 이씨는 마음이 불편하니 다시는 전화하지 말아줄 것만 부탁했다.

언제나 약자에게 마음이 쏠리는 이씨는 휠체어 5대를 구입해 지체장애인들에게 전해주었다. 그중엔 1대에 1백만원이나 하는 것도 있다. 시골의 한 종교기관에 2백만원짜리 에어컨을 사다주었다.앞으로 세탁기가 필요한 장애인시설에는 제일 큰 용량의 세탁기를 사줄 계획도 갖고 있다. 그러나막상 그 자신은 의사의 처방에도 불구, 8만원짜리 2중 돋보기안경 사는 것이 아까워 그냥저냥 보통 돋보기안경으로 버티고 있다. 그러면서도 10분의 1 가운데 아직 남아있는 돈을 '약한 사람들'을 위해 쓴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외환위기로 국가가 부도날 지경이 돼도 장롱속에 수십만달러를 넣어두고 더 오르기만을 기다리는돈중독자들의 눈엔 자기것도 못챙기는 위인으로 보이리라. 하지만 그의 제자들은 "우리 선생님은워낙 그런 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약빠르지 못한, 시속을 떠난듯한 선생을 두고 학창시절 제자들은 비웃기도 하고 놀리기도 많이 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들 가슴속에 따스한 강물이 되어 메마름을 적셔주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가 맡았던 반학생들의 입학성적이 학교에서 수위를차지했을때 공교롭게도 맏아들은 낙방을 했다. 그저 제자들이 장해서 싱글거리는 그에게 아내는 "자기아들이 떨어져도 웃는 양반"이라고 야속해 했다. 시험때 책상속의 책 한권때문에 다른 선생으로부터 커닝혐의를 받고 울었던 한 제자는 '네가 정직한 것을 내가 안다'는 이종석선생의 따스한말 한마디로 당시의 억울함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들려주었다.

2년전 전립선암의 선고를 받았지만 특유의 낙천적인 생각으로 지금까지 거뜬히 이겨내고 있다. 아내가 뭐라고 불평하면 "참으소, 암걸린대이"라고 농담할 정도이다. 퇴직후인 요즘은 환경운동연합회원에 가입해 환경관련 강연회의 강사로 봉사활동을 하는가하면 가끔씩은 그가'내 밥통'이라고부르는 빈 세제통을 들고 시내로 나가 담배꽁초를 줍는다. 사회봉사처벌을 받은 것으로 오인하는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상관치 않는다. "나는 이 땅이 더 더럽기전에 떠나가겠지만 우리 후손들은우짭니꺼. 내일은 이러하지 아니하리라는 소망으로 담배꽁초를 줍습니더"

〈全敬玉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