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모두가 움츠러들고 있다. 이미 작년부터 사회 문제로 떠오른 '명예 퇴직'이나 '정리 해고'사태로 인해 고개 숙인 아버지가 많았으나 이제는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고개를 숙일 판이다.IMF가 시키는대로 하면 우리나라에도 실업자 200만의 시대는 금방 온다고 한다. 즉 노동하는 사람 6명 중 1명은 실업자인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비록 약간의 오차는 있을지언정 대량 실업의시대가 다가오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과연 이러한 대량 실업의 시대에 어떠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사회적 합의란 단순히 노, 사, 정의 대표단이 한 자리에 앉아서 입을 맞춘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보다 근본적으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직접적 참여와 토론을 통해서 민주적으로의사 수렴 과정을 거쳐야만 실질적인 힘을 가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합의의 결과가 탁상공론이나 값싼 흥정에 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본인이 보기에 우리는 크게 두가지의 길을 가야 한다.
그 하나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work sharing)의 길이다. 다시 말해 모두가 적게일하면서 일거리가 없는 사람에게 일거리를 나누어 주자는 것이다. 예컨대 9명이 10시간씩 일하다가 모두가 6시간씩만 일하게 되면 15명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 그러면 기존 9명의 일자리는 물론 보호될 뿐만 아니라, 추가로 6명을 더 구제할 수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이미 1994년 이후로오늘날까지 독일의 폭스바겐사에서 성공적으로 실험되고 있다. 당시 이 회사는 3만명을 정리 해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노조와 교섭을 벌인 끝에 주 4일제(28.8시간)로 노동시간을 단축해 고용을보장했다. 그런데 이 방식에는 임금감축을 둘러싸고 노사간에 충돌이 있다. 노조는 임금감축없는노동시간 단축과 고용보장을 요구하고 사용자는 고용보장과 노동시간 단축 대신에 임금감축을 요구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만일 개별 기업이 임금을 줄인다면 우리는 그대신 '사회적으로' 노동자들의 생활을 보장하면 된다. 즉 임금소득이 줄어든다면임금 지출을 줄여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택제도, 교육제도, 육아, 의료,조세제도 등을 고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별로 돈 들이지 않고도 편안히 살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노동자들이 불과 몇 만원의 임금인상 투쟁을 위해 길거리로 나설 필요도 없고 파업을 조직할필요도 없다.
또 다른 사회적 합의의 내용은 우리가 과연 시장경쟁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경쟁과 분열, 파괴와훼손의 패러다임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삶의 패러다임을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다.이 두 번째 합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사실상 첫 번째 합의도 그 효력을 발휘하기 힘든다.따지고 보면 범지구적으로 진행되는 세계경쟁에서는 분명히 승자와 패자가 갈라진다. 모두가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때 승자는 20%%에 불과하고 패자가 80%%나 된다면, 과연 우리는 이러한분열과 경쟁을 초래하는 살벌한 게임 자체를 계속할 것인가? 그래서 진정한 대안은 이렇다. 즉 모든 지구촌 사회가 각자의 필요에 따라 스스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자급자족 원칙의 새 패러다임을개발하되, 서로 부족한 부분은 긴밀한 유대 속에 상부상조하는 '네트워크형 자급자족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 진지한 합의가 이뤄진다면 우리는 온갖 사회적 분열상을 극복하고 '실업의 공포감'도 없이 진정으로 신바람이 흘러 넘치는 새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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