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철신화 30년(상)

1967년 9월 당시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는 대한중석사장 박태준(朴泰俊)을 불렀다."이건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몸 희생할수 있는 인물만이 이 일을 할수 있어. 아무소리 말고 맡아"'제철보국(製鐵報國)'의 기치아래 용광로 구경도 못해본 사람들이 제철소를 만들기 위해 모이기 시작했다.

1년후인 68년 4월1일 포철종합제철이 공식 탄생했다. 그로부터 29년이 지난 97년말 포철의 성적표는 조강생산량 2천6백67만9천t으로 이때까지 세계최대 철강사로 명성을 날렸던 신일본제철(2천6백50만t)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국가부도 상황에 직면,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포철은 "그래도 철강업만은 우리가 제일"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했다.

창립 30주년을 맞는 98년 포철의 목표는 조강생산량 2천8백만t.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철강사로자리잡는 원년이 되는 것이다. 영일만 갯벌에서 시작한 포철신화가 드디어 완성되는 순간이다.포철은 '바늘에서 항공모함까지 우리가 만든다'는 기치로 철을 생산하기 시작한 이래 단한번도 적자를 낸적이 없다. 또 지난해 매출은 9조5천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세계적 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사는 국내기업중 포철에 대해서만 신용등급을 A2로 평가, 세계 최상위권에 올려놓았다.

지난해 연말 김만제회장이 외환도입을 위해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것도 막강 포철총수라는 현재의 위치가 최대 요인으로 작용했음은 불문가지다.

포철은 포항제철소에 열연 냉연 후판 선재 스테인레스등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를, 광양제철소에는수요가 많은 열연 및 냉연강판 위주의 소품종 다량생산 체제를 갖추는 철저한 역할분담을 통해 '철강메이저'의 자리를 굳혔다.

'자원(資源)은 유한(有限), 창의(創意)는 무한(無限)'. 포항제철소 정문앞에 내걸린 이 문구가 포철의 정신이다. 포철맨들은 이 정신을 통해 선진철강사들이 60년~1백년만에 본궤도에 올린 제철공장을 30년만에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들었다.

포철정신을 대변하는 말로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 '우향우(右向右). 포철설립의 기초자본은 대일청구권(對日請求權) 자금 1억달러였다. 이 자금은 극단적으로는 일제36년간의 통치를 더 이상 문제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일본으로부터 받은, 민족자존심을 완전히 꺾은 피맺힌 돈이었다.포철건설 초기 사장 박태준은 직원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일명 롬멜하우스앞에서 오른쪽에 있는영일만을 바라보며 "우향우"를 외친뒤 말했다.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나와 여러분들은 국가와국민에게 씻을수 없는 죄를 짓게되는 것이오. 그때 나와 여러분들은 우향우를 해서 영일만에 몸을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오" 이 말은 모든 포철관련자에게 두고두고 되살아나 분발을 독려하는 문구가 됐다.

포철신화를 만든 또하나의 요소는 기술축적을 바탕으로 하는 경쟁력. 포철은 지난 86년 국내 최초의 연구중심 대학 포항공대를 설립했다. 이듬해에는 사내 기술연구소와는 별도로 국내 최대의 민간연구 기관인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을 만들었다. 또 95년에는 독일 뒤셀도르프에 유럽연구소를 세웠고, 일본 도쿄에 도쿄기술연구소를 차렸다.

기초과학연구는 포항공대가, 응용기술 개발은 포항산과연, 두 곳의 제철소에서는 현장적용을 각각맡는 산학연 연계를 포철은 이미 현실화 했다.

우리경제가 앞날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위기상황을 맞은 상태에서도 포철만은 전세계의 주목을받으며 성장일로를 내달리고 있다. 그러나 1998년 한국의 경제전망은 사상 최악이다. 외환부족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국가부도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IMF구제금융은 포철초기의 대일청구권 자금만큼이나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다.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시작한 포철건립에 실패하면 모두가 영일만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던 때와마찬가지로 구제금융으로 재기를 다짐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우향우정신'과 같은 결사의 각오를다져야할 시점이다. 민간기업보다 더 혹독한 시련을 감내하며 체질개선을 하고 있는 포철이 더욱새롭게 보이는 이유를 따져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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