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98 새해특집-21C 새지평

(1)변하는 대구

지난해말 삼성상용차 대형라인이 창원에서 대구로 이전할때 함께 이사한 '삼성 맨'에게 큰 고민거리가 있었다. "대구사람이 보수적이라 사귀기 힘들다고 하던데 대구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며 지레 겁부터 먹은 것. 전국을 돌며 국정감사를 한 전라도 출신 한 국회의원은 대구를 "폐쇄성과 끼리 문화가 강해 타지 사람이 섞여 살기가 힘든 도시"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대구를 보는 '눈' 이다.

진해 출신으로 대구에서 산지 5년된 삼성상용차 이준석총무팀장(44)은 "살아보면 그렇지 않지만문제는 외부에서 대구를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자기 비판도 드세다. 대구 토박이인 주부 최모씨(44.수성구 지산동)는 "대구사람은 물건 하나를 사도 옆집에서 사는 것을 봐가며 산다"며 "색다르고 튀는 것을 경계하니 창의와 개성이 싹틀 여지가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표현은 다르지만 뜻은 하나. '지나치게 보수적이다'는 것. 실제 대구는 폐쇄적이다. 사람을 처음만나면 고향과 출신학교나 본관부터 묻는다. 지연.학연.혈연으로 인연의 끈을 찾는 것이다. 끈이없으면 대화의 주제조차 못잡아 당황한다.

이 인습(因習)은 금융기관에 돈을 빌릴 때나 중앙정부에 예산을 딸 때도 나타난다. 아는 사람이아니면 끈을 달 생각부터 먼저하는 것. 신용보증기금대구본부 한 관계자는 "기업가가 신용보증을받으러 오기 전에 반드시 아는 사람이나 유력인사의 부탁 전화가 온다"며 "기분 상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고 푸념했다.

대구.경북 사람만 모여 살다보니 타지나 외국에 대한 관심이 적다. 알 필요도 없다. 당연히 정보가부족하고 사고의 폭이 좁다. 한 사람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 언행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자칫언행에 실수하면 곧바로 부풀려져 되돌아 온다.

변화도 두렵다. 대구.경북을 떠나면 못사는 줄 안다. 외국인이나 외지인이 들어와 문화 충격을 주는 것도 달갑지 않다.

체면은 주요 규범. 지난해말 지하철1호선 진천~중앙로역 구간 개통뒤 대구지하철공사가 퇴직 공무원 모임인 시정동우회원을 대상으로 파트타임으로 지하철 질서를 계도할 사람을 모집했다. 그러나신청자는 계획한 인원의 1/5인 10명이 채 안됐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체면이 깎인다는게 그 이유.

공직사회는 더 굳어 있다. 하위직 공무원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가는 '시키는 일이나 잘해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이들이 고위공무원이 돼 '말 발'이 서게되면 이미 세상이 변해 전혀 새롭지 못하다. 경쟁력이 생길 턱이 없다.

물론 보수성이 강한게 무조건 나쁘지는 않다. 예의와 염치로 잘 규제된 사회. 사람들이 의리가 있고 명분이 살아 있는 도시.

하지만 첨단 정보화 사회, 변화와 다양성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21세기에는 걸맞지 않다. 무인년(戊寅年) 호랑이 해 첫 날에 대구가 보수란 갑옷을 벗어 던져야 한다는 외침이 커지고 있는 이유이다.

합리성.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진취적이고 도전적 사고로 스스로 새로워 지는 것.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주부는 주부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그 나름의 껍질을 깨야 한다. 열린 도시, 그래야만 타지 사람과 외국인이 대구의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다. 또 많은 인재를 서울로, 워싱턴으로, 도쿄로 보내 그들의 특장을 대구에 접목시킬 수 있도록 해야한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각계가 도시체질 개선을 공통목표로 삼아 조직적-지속적으로 대구에 충격을 가할 때 달성될 수 있다. 전병학 대은금융경제연구소장(56)은 "타인과 바깥 그리고 미래에대한 진지한 관심이 보수를 벗는 첫 단추"라며 "실력을 키우면 불확실한 21세기가 마냥 두렵지는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崔在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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