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서설의 의미

기분이 언짢을 때는 만사 다 접어 두고 산을 찾자. 1월의 어느 날 아직도눈발이 흩날리는 창밖을내다보며 그렇게 마음 먹고 바삐 채비를 했다.

발목보다 더 깊이 빠지는 눈밭을 해치고 걷는다. 드문드문 등산객들이 보이는 길, 이따금 나뭇가지 위에 쌓였던 눈송이들이 채 무게를 이기지 못해 떨어지면서 어깨며 머리를 툭툭 친다. 처음엔깜짝깜짝 놀라다가 잦은 그 일에도 이내 친숙해진다.

목적지는 용지봉, 범물동에 위치한 해발 600m 남짓 되는 작은 봉우리이다. 함참을 오르니 이마에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사위는 온통 정적 뿐, 이젠 인적마저 없다. 잠시 땀을 흘리면서 처녀림과같은 눈밭을 내려다 본다. 곧 눈에 덮이겠지만 무언가 적어보고 싶어 언 손가락으로 평소 애송하는 시구 몇 줄을 깊이 새긴다.

눈을 들어 무리지어 남녘을 향해 떨며 서 있는 마른 억새들을 바라본다.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것일까. 문득 박새 한 마리가 억새 머리 위로 날아 오르다 어디론가 곧장 숨어 버린다. 이 눈밭속에서 추위를 견딜 먹이를 찾고 있는가 보다.

깊옆 논덮인 바위에 평소 좋아하는 '천년'이라는 말을 다시 새겨 본다. 천년은 어쩌면 영원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원한 것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마침내 정상에 발을 딛고 선다. 가슴이 뿌듯하다. 한번 크게 외치고 싶어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목이 터져라 부른다. 눈밭에 묻어 돌아오는 메아리를 응답이라 여기며 낮게 내려 앉은 하늘을 우러른다.

산을 내려오며 1월에 찾아 온 서설의 의미를 생각한다. 어렵게 가는 길 더 어렵사리 가야함을 눈은 은연중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일까. 슬프고도 참담한 일들일랑 다 묻어버릴 듯이 눈밭은 여전히온 천지를 뒤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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