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달라진 세상 새 아메리카-식생활의 변화

"아이 헤이트 맥도널드"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 여성 앤 엘빈은 바쁜 시간중에 간편하게 허기를 때울수 있는 미국의 대표적 패스트푸드인 맥도널드 햄버거를 '증오'한다고 말했다. 기름기 많은 고기를 넣어 열량이 높은데다 갈수록 크기가 커져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미국인들의 식사량이 느는 것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었다. 실제로 미국식당에 갔을때 미국인들은 한국인 두명이 먹을만한 양을 혼자서 다 먹고 거기다 적지 않은 디저트까지 거뜬히 해치웠다. 콜라도 가장 적은 '스몰 사이즈'가 우리의 '라지' 크기만 하고, 영화관 등에서 양동이만한큰컵에 가득 든 팝콘을 혼자서 먹는 미국인들이 허다했다.

지금도 길거리에서 날씬한 사람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살만 찌우는 미국 음식을 꺼리는 미국인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요리방식도 고기의 경우 별다른 양념없이 그냥 구워 소금과 후추만 뿌려먹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미국 음식 대신 자극적인 맛을 원하고 있다.

매콤 새콤 달콤한 맛. 건강에 좋은 해산물을 많이 쓰고 음식량도 많지 않으면서 혀끝을 자극하는새로운 맛을 주는 아시아음식이 미국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김치보다 더 매운 음식,익히지 않은 생선회 등 그동안 대다수 미국인들이 거부했던 음식들이 인기를 끌면서 아시아와 미국 요리방식을 혼합한 식당 등 신종 음식점까지 대도시를 중심으로 속속 생겨나고 있다.워싱턴 백악관에서 조금 떨어진 버몬트 애비뉴에 있는 '팬 아시안'(Pan Asian) 식당. 아시아음식이 총망라돼있다는 식당 간판이 흥미로워 2층 입구로 들어가보았다.

낮 1시. 20여명의 미국인들이 식당 안을 꽉 채운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식당안 벽면에 코리아, 차이나,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각국의 영어문자와 그림이 담긴 액자가 걸려있어 인상적이었다. 뷔페로 차려놓은 음식은 탕수육, 잡채, 스시(생선, 맛살, 오이 등을 넣은 초밥), 김치, 고춧가루로 무친숙주나물 등 스무가지가 넘었다. 한 백인 남성은 접시위에 밥과 김치를 수북이 담아갔는데 김치는주인이 중국인이라 그런지 약간 달고 매운맛이 덜했다.

샌프란시스코의 태국식당 '아 로이(Ar Roi) 레스토랑'에서 만난 미국 여성 캐롤 굿맨은 요리학원강의를 들을 정도로 태국 음식 예찬론자였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중국 음식보다 태국 음식은달고 새콤하고 매운 맛이 적절히 조화돼 더 맛있다"고 설명한 그녀는 "미국은 이민사회라서 어디서든 동양식당을 쉽게 볼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비빔밥은 음식 전문잡지인 '푸드 앤 와인'에 98년 최고 아시아음식으로 꼽힐 정도로 미국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뉴욕의 고급패션상점이 즐비한 소호거리에는 비빔밥을 좋아하는 미국인이 운영하는 '밥'(Bop) 식당이 있는데 음식 전문잡지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매운 맛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 음식을 맵게 먹는 아시아 이민자들이 증가하고, 칠리 고추로 유명한 멕시코와 접경한 미국 남부지역의 매운 음식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미국인들이 매운 맛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시카고 인근 스프링필드에 있는 식당 '보우너즈 피자 펍'(Boners Pizza Pub'에 가보았다. 보통 피자와 맥주를 먹으며 TV화면의 스포츠경기를 관람하는 이 식당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식은 '불처럼 화끈한 공'(Red Ball of Fire). 멕시코산 고추와 고춧가루 등을 넣어 입안이 화끈해질 정도로맵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붙인 피자 이름이라는 것이 종업원의 설명이었다. 메뉴판에 맵거나보통 요리로 주문하라고 씌여있어 보통 요리를 시켰는데도 맛이 여간 매운게 아니었다.음식에 고추를 많이 넣는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 이곳의 대표적인 시장인 프렌치 마켓에 가면 말린 붉은 고추를 주렁주렁 매달아놓고 파는 모습이 마치 딴나라에 온듯한 느낌을 준다. 요리가 취미라는 한국 이민 1.5세 김선휘씨는 "검보수프, 잠발라야 등 고추를 넣는 뉴올리언스의 음식은 요리사 폴 푸르돔에 의해 미국 전역에 소개됐는데 매콤한 맛이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다"고 말했다.

시애틀 1번 애비뉴에 있는 식당 '플라잉 피시'(Flying Fish)는 아시아와 미국 요리방식을 혼합한대표적 경우. 보다 색다른 음식을 원하지만 순 아시아 음식은 입에 덜 맞는 미국인들을 위해 개발된 식당이다.

저녁 7시30분.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줄서 기다려야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태국 카레로 양념한 조개 요리, 중국 소시지를 곁들인 새우 요리 등 해산물이 주종을 이뤘다. 중국 사천 후추와카레, 토마토 배즙 등으로 맛을 낸 생선요리를 시켜 먹어봤는데 매콤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일품이었다.

요즘 한창 점포망을 넓히고 있는 '월드 랩스'(World Wrapps)는 아시아 요리방식을 응용한 패스트푸드점. 태국 치킨, 사무라이 연어 등 다양한 고기류에 밥, 야채 등을 섞어 밀전병처럼 쌀반죽에둘둘 말아 익혀낸 것으로 인기가 치솟고 있다.

"지난 12월 추수감사절날 LA에서 친척이 와서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고 미국식으로 칠면조 요리를 해서 냈더니 맛이 없다고 불평을 하는게 아니겠어요. 좀 맵게 요리할걸 잘못했나봐요"스프링필드 외곽에서 만난 조 핸드릭슨의 이야기는 미국인들의 식성이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음을실감케 했다.

〈미국서 金英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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