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백산맥-풍기 금계리 사람들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경북 영주시 풍기군 금계리. 담벽에 쓰인 '섬뜩한' 구호가 먼저 반긴다.

소백산 줄기 아래.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 도솔봉, '꽃'같은 봉우리에 둘러싸인채 아담하게 자리잡은 마을 금계리. 일찍이 '피난골'이라 불리던 곳이다. '정감록'은 이 마을을 살기좋은 10군데 승지마을중 최고로 꼽았다. 굵은 소나무숲과 움푹 패인 소(沼), 소백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여느 마을과 다르다.

금계리 사람들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열 사람중 여덟 사람이 이북이다. 구한말, 일제시대 그리고해방전후. 수탈과 침략에 몸서리치던 그들은 '정감록'을 믿고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담벽에 쓰인구호가 아직도 퇴색되지 않고 선명한 것이 이들에 대한 의심스런 눈길같다.

통상 이북사람이라면 억척같은 삶의 표본이다. 실제로 금계리 사람들은 잘 산다. '신초'라고 불리는 인삼 덕분이다. 마을을 들어서면 햇볕을 막기 위해 차양막이 쳐진 인삼포가 마을을 덮고 있다.가래삽질을 하고 있는 이영배(71) 황장회(63) 노부부. 이들의 고향도 이북이다. 그러나 이할아버지는 "이제 금계리 사람이지 이북이다 이남이다 할 것 없다"고 한다. 증조할아버지때 이곳으로 왔다. 황할머니의 친정고향은 평양. "여기에 온다고 온가족이 40여일을 걸어왔다"고 한다. 그것도 1백년전의 일,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얘기다.

그리곤 이할아버지는 인삼얘기뿐이다. "멀리서 왔는데 가르쳐 줘야 한다"며 지금하고 있는 가래질은 작통친다(골 만든다)고 하며, 4년근에서 '딸'(씨) 채취해 10월 하순 파종을 하며, 1년5개월을키운 놈은 '시근'(細根)이며, 이 놈을 작통친 골에 심으니 심자 말자 2년근이 되며….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내복하나만 입고도 땀을 흘리며 얘기한다. "인삼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근력이 참 좋아보인다"고 하니 "그래도 좋은 것은 못먹어"한다.

줄을 당기고 삽을 퍼올리는 것이 손발이 척척 맞는다. 45년전 윗마을(2동) 아랫마을(1동)에 살다가 중매로 결혼했다. 3남 3녀를 낳아 서울 천안 경주로 떠나보내고 지금은 막내아들과 딸 하나씩남겨두고 있다. 황할머니는 "소백산 기가 있어 그런지 금산인삼이니 강화인삼이니 해도 풍기인삼을 최고로 친다"며 "이놈 키워 밥먹고 애들 키우고 다 했다"고 한다. 한때 논농사도 지었지만 삼(蔘)농사가 최고였다.

옆 인삼포의 최중렬씨(43)는 삼포 위에 덮어둔 볏짚태우기에 한창이다. 거름도 되고 충(벌레)도죽이기 위한 것. 갑자기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삐리리리~". 휴대폰소리다. 산기슭 밭까지 찾아온문명의 이기. 부유한 농가의 표시인지 아니면 산골까지 점유한 '무선통신의 혁명'인지, 잠시 가벼운 느낌이 든다.

금계리는 풍기인삼이 처음 재배된 곳이다. 1542년 당시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소백산에서 채취한 씨를 뿌렸다. 그때까지 인삼은 집에서 키운 가삼(家蔘)이 아니라 송이버섯처럼 산에서 채취했다. 이씨가 금계리에 뿌리를 내리면서 점차 퍼져 풍기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삼재배지로 만들었다. 풍기사람 열 사람중 한 사람은 인삼농사를 짓는다.

풍기인삼협동조합(0572-636-2714) 노재선(44)총무과장은 "배수가 잘 되고 흙이 좋아 인삼재배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소백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어 낮과 밤의 기온차가 높은 것도이상적인 조건"이라고 했다. 풍기인삼은 태극삼(수삼을 물에 삶아 내는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도 터지지 않는다.

인삼이 건강식품에 들다보니 IMF타격이 심한 편. 1근(300g) 도매가가 3만원이었지만 IMF이후 2만원선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재배농사의 타격은 크지 않다. 그러나 올 가을 농가 출하가 시작되면 심각한 지경까지 이르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할아버지가 얘기하는 "아랫도리가 쩍 벌어지고 몸도 삽자루처럼 통통한 인삼"을 보고 싶었다.인심좋던 노부부니까 한번 부탁해보자 싶었다. 그런데 난색을 표명한다. 도둑이 설치기 때문이다.한번 더 부탁하면 들어줄 성도 싶었다. 그러나 돌아섰다.

자식처럼 몇년을 공들인, 마음놓고 살기 위해 천리길을 이주해온 선조의 노력의 산물, 그리고 그들의 골드러시로 찾아낸 금같은 인삼이 아닌가. 오히려 미안해하는 노부부에 감사하며 기껍게 돌아섰다.

특별취재반 서종철기자 김중기기자 김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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