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읍성의 4대 관문중 가장 컸던 남문위에 세워졌던 영남제일관의 1백년전 모습.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의 위상에 걸맞게 5칸으로 지어졌다. ㄷ건축이 80년대에 대구망우공원에 세운 영남제일관. 몸집만 부풀렸지 위치,품격,재질 세가지가 다 원형과 맞지않다.
'대구읍성'남문(南門)인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망우공원)의 원래 모습은 서울 남대문(국보1호)처럼 '목조 5칸'이었으나 지난 80년 '콘크리트 3칸'으로 격하된 채 복원된 것으로 밝혀져 당국의 문화재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영남제일관은 구한말인 광무 10년(1906년)~11년경에 대구읍성과 함께 헐렸다가 대구 망우공원에새로 세워졌으나 문루의 위치.규모.품격면에서 원형과 동떨어져 과연 '영남제일관'으로 계속 불러야하는지 의문마저 빚고 있다.
사진연구가 정성길씨가 20일 공개한 90여년전 사진에는 대구 남문임을 보여주는 '영남제일관'이라는 편액과 기둥.기와골까지 선명하게 드러나 이를 둘러싼 그간의 의혹들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에서 '영남제일관'은 석축 기대(基臺) 중앙에 사람이 출입하는 무지개문이 있고 그위에 2층문루(門樓)를 세웠는데 1층 5칸(기둥 6개), 2층 3칸(기둥4개)으로 돼있다.
"신분에 따라 방칸수와 크기가 달라지는 주거건축처럼 읍성의 관문도 관할구역의 정치적 중요성이나 물산력 등 위계에 따라 달라진다"는 고건축전문가 김일진교수(영남대.문화재위원)는 서울 남대문 문루가 1층 5칸.2층 5칸, 영남제일관 1층 5칸.2층 3칸, 전북 전주시 소재 호남제일관(보물308호)은 1층 3칸.2층 3칸으로 품격이 각각 달랐다고 밝히고, 영남제일관은 호남제일관보다 기와골수가 6~8개 모자랄 정도로 몸집이 훨씬 작았지만 5칸으로 지어져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의 정치적중요성, 물산집산비중등을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문루의 칸수야말로 경상감영 소재지 대구의 정치적.군사적.경제적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김교수는 영남제일관 복원에 관여한 이들의 고증소홀로 중요사료가 왜곡됐다며 이번 사진발굴로 영남제일관의 제모습을 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영남제일관의 원위치가 약전골목 대남한의원 사거리인데다가 본래 목조건물을 시멘콘크리트로짓는다고 해서 반대했었다"는 민속학자 김택규박사는 "현재 망우공원 내에 원크기의 1.5배로 부풀려 지어진 영남제일관은 대구 상징물의 하나이지 결코 대구 읍성 남문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는견해를 피력했다.
한편 대구시 관계자는 정씨가 발굴한 이번 사진이 '대구부사'(1943년 판)에 게재된 사진과 흡사하다며, "만약 영남제일관의 고증 잘못이 확실하다면 현판을 떼는 문제도 고려해보겠다"고 해명했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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