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국회가 열리면 국회의 모든 진행 사항이 방송된다. 국정 현안에 관해 여야의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설전과 토론은 있는 그대로 시민들에게 전달된다. 국회의원들의 높은식견과 해박한 지식은 내버려두고라도 질의와 응답에 임하는 그들의 성실한 자세는 독일에서 공부하는 동안 내내 나에게 심한 문화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그동안 소위 국회 청문회라는것을 경험하기는 하였지만, 달라진 것은 실제로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국정 현안은 뒤로하고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만 열올리는 국회의원들의 진기 명기만을 매일 매일 감상한다. 주먹구구식 지식으로 우격다짐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우리 국회의원들의 멱살잡이 의사진행에 길들여지다 보니, 우리는 이제 정치라는 것은 본래 '더러운 것'이라고 오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런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며칠 전 신문에서 우연히 토막기사 하나를 읽고 나서이다. 그것은 '국회의원들도 앞자리는 싫어'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호기심만을자극하는 대수롭지 않은 사실로 치부할 수도 있다. 우리는 여럿이 모인 장소에서는 대체로 앞자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대형 강의실에서 강의를 할 때마다 텅 빈 앞자리로 학생들을 불러모으려고 갖은 애를 다 쓰지만 학생들은 대부분 뒷자리를 선호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 숙인다'는속담이 과연 우리의 앞자리 기피증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 우리는 물론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유가적 전통의 영향으로 남의 앞에 나서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 그것이 정말 우리의 전통과관습이라면, 의석 배치를 앞두고 "앞자리만은 제발 피해달라"는 국회의원들의 청탁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뒤집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관행을 고쳐서 바람직한 질서를 정착시키기보다는 관행을 당위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늘 그래왔으니까 그래야한다는 투이다. 초선 의원들이 앞줄에 앉고 다선 의원들이 뒷줄을 차지하는 국회의 관행도 앞자리를 싫어하는 우리 국민성을 표현하는 한 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나쁜 관행을 고칠 개혁의지를 전혀 가지고있지 않은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국회의원들의 앞자리 기피증은 국회가 파행적으로 운영되는원인일 뿐만 아니라 국민에 대한 책임의 회피이다. 권한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은 책임을 가진다는 것은 정치의 기본원리이다. 서양의 민주주의는 바로 이와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바탕을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국회는 당대표, 원내총무, 사무총장과 같은 의원들이 앞자리에앉는다. 앞자리는 자신이 대변하는 여론과 정책을 당당하게 주장할수 있는 권한과 동시에 이에대한 책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앞자리를 싫어하는 까닭이 '혹시' 국민에 대한 책임정치보다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뒷자리에 앉아서 세력다툼이나 하고 잇속이나 챙기려는 권력정치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이러한 '혹시'가 '역시'로 드러난다면, 국회의원들은 제일 먼저 정리해고되어야 한다.만약 그렇지 않다면,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말과 행위에 책임을 질수 있도록 국회의 모든 토론은즉각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어떤 국회의원이 민주적 의정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또 어떤의원이 목청만 크고 몸싸움만 잘하는지 알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을책임의 앞자리에 앉힐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국민들이다. 우리가 앞으로 치를 보궐선거에서 한 표를 올바로 행사한다면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두려워할 줄 알아 책임의 앞자리에 앉으려고서로 앞다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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