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화통역봉사모임 어불림

"사랑을 표현하는데 말이 필요한가요"

수화통역 자원봉사모임 '어불림'에는 소리없는 사랑이 가득하다.

20여명의 회원들이 매주 청각장애인 가정을 방문하는 봉사활동을 시작한지 햇수로만 3년째.당초 '통역'을 목표로 출발했지만 지금 이들의 활동은 수화 '지도'에 더 가깝다.가족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려는 우리네 정서에 떠밀려 구석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청각장애인들중엔 수화뿐 아니라 글도 배우지 못한 이가 많기 때문이다.

"많은 사물을 알면서도 그것을 말하고 쓰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에게 수화를 수십번씩 가르쳐 어설프게나마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을 때 느끼는 기쁨이란, 안해본 사람은 모를 겁니다"범물동의 한 가정을 방문, 청각장애인 부부와 정상인 자녀들에게 수화와 글을 가르치는 이혜진씨는 어불림 활동의 보람을 이렇게 설명한다.

대학생, 도청 공무원, 초등학교 서무실 직원, 간호사, 심리상담원, 교회 직원, 휴학생 등 다양한 회원들의 이력만큼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유도 가지가지다.

청각장애를 가진 민원인, 환자를 돕거나 장애인 상담이 목적인 회원부터 신체장애로 고생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조그만 봉사라도 하려는 회원까지.

청각장애인 오빠와 마음을 나누기 위해 여동생, 오빠의 여자친구가 나란히 어불림을 찾은 경우도있었다.

자원봉사를 쉽고 어려운 일로 구분할 순 없지만 수화통역은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활동이다. 수화단어 하나하나를 외우고 익혀야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본과정에만 3~4개월, 능숙하게 수화를 구사하려면 3~4년의 훈련이 필요하다. 이때문에 봉사활동을 쉽게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고 회장 이은주씨는 안타까워 한다.

"마음만 급해요. 뭔가를 하고 싶다는 의욕은 넘치는데 준비과정을 참지 못합니다"청각장애인들의 입과 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회원들의 손짓에 '어불림'이라는 모임 이름처럼장애인과 정상인이 격의없이 어울릴 수 있는 세상이 좀더 가까이 다가온 듯하다.〈金嘉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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